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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곰 Oct 01. 2024

가난과 불안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법(8)

7장: 따뜻한 밥 한 공기

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했다. 그리고, 국민학교에서 시작한 어린 학창 시절을 초등학교에서 마무리했다. 내 나이를 가늠할 수 있다면, 아마도 나와 같은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로 그 시절의 풍경을 함께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운동장에서 울려 퍼지던 교가, 매일 아침마다 줄을 맞춰 서서 등교했던 그 날들. 우리는 변화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같은 세대의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득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꾸던 그 순간, 우리는 어렴풋이 '변화'라는 단어에 대해서 배웠다. 하지만 교실의 창문을 넘나들던 바람, 아이들 사이를 뛰어다니던 웃음소리,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울리던 종소리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운동장의 흙먼지가 얼굴을 스치던 그때나, 지금 어른이 되어 돌아봐도 여전히 즐거움만이 가득히 남아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 시절을 지나왔다면, 아마 지금쯤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옛 추억들이 피어오를 것이다. 바뀌지 않을 것 같던 교정과 교실이 이름을 바꾸고, 주변이 달라지는 동안에도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의 성장을 지켜봐 주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그 순간들은 우리 세대만이 품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고, 같은 시절을 거쳐 온 사람들에게 하나의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하고 처음으로 학교라는 세상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낯섦과 기대감을 동시에 느꼈다. 어딘가 내게 너무 커 보이는 운동장,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선생님의 목소리가 이끄는 교실 안 풍경이 모두 나를 둘러싼 새로운 세상이었다. 단체생활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던 어린 마음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줄을 맞춰 이동하고, 모두가 같은 책을 펴고 같은 내용을 배운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또 조금은 어색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건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아침부터 기다려온 그 시간, 두 손으로 작은 배식판을 받아 들고 교실 밖 식당으로 향하는 순간이 가장 좋았다. 우리 집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음식 냄새가 가득한 식당은 나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었고, 그곳에서 처음 만난 우유와 따끈따끈한 밥은 어린 내게 작은 행복이었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늘 동생과 남아, 냉장고에 미리 싸두신 차가운 반찬과 밥을 먹는 게 일상이었다. 불을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어른들의 말에 차가운 반찬들이 일상이었던 나에게, 학교에서 먹는 점심은 그저 식사가 아닌, '따뜻함' 그 자체였다. 국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김치와 나물 반찬의 고소한 냄새, 우유를 처음으로 입에 대었을 때 느꼈던 신선함까지.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친구들이 반찬 투정을 하거나, 입맛이 없다며 결식할 때도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외면한 밥 한 공기가 나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나는 시간이 지나도, 학교 밥을 무척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으로 올라가며 친구들이 자주 “학교 밥은 맛없어!”라며 외부 식당을 선호할 때도 나는 학교 식당의 밥을 더 자주 찾았다. 따뜻한 밥과 함께라면 어떤 반찬이라도 괜찮았다. 군대에 가서도, 직장에 가서도, 그 따뜻함은 여전히 내게 특별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도, 매일 점심시간이 되면 난 기대감으로 가득 차곤 한다. 식판 위에 올려지는 밥 한 공기, 국 한 그릇, 그리고 정성스레 준비된 반찬 몇 가지. 회사밥이라 무심히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한상차림 안에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걸 안다. 직장 동료들이 외식을 제안할 때도, 난 그 밥상이 주는 따뜻함을 잃어버리는 것에 종종 아쉬워한다.


무엇이든 적당히 차려진 밥상을 좋아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온기를 어린 시절부터 느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작은 배식판에 담긴 밥 한 공기가 어린 나에게 소중했던 것처럼, 지금도 난 그 밥 한 공기 속에 스며든 따스함을 느낀다. 그리움과 감사함을 담아, 나는 오늘도 회사 식당에서 정성스레 준비된 한 끼를 천천히 음미하며, 한 그릇의 따뜻함을 가슴속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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