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부르는 서비스

뻔한 가식적인 멘트? NO 관찰을 통한 진실된 멘트

by SONEA

고등학교 2학년 시절 한창 입시 미술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어느 순간 문득 그림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불편함을 느끼긴 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생각하고 깨달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즉시 나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가졌고 붓을 내려놓고 미친 듯이 인터넷에서 이유를 찾기 시작하였다. 정보의 양은 굉장히 많았지만 결국 관통하는 한 가지 결론이 있었다. '실명 가능성 있는 질병의 증상' 다음날 곧바로 안과를 찾아갔고 정밀한 눈 검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는 눈 근육이 중심으로 모아서 보는 힘이 굉장히 약하다. 즉 선천적으로 가진 장애라고 안과 의사는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다 나는 한 가지 사물을 5초 이상 또렷하게 보지 못한다. 잠시라도 집중력을 잃거나 긴장을 놓치면 그 즉시 초점이 흐려진다. 이것이 어느 정도로 흐려지는가 하면 다들 손가락을 눈 사이에 가까이 가져오며 눈을 가운데로 모으는 행위를 어릴 때 한 번이라도 해봤을 것이다. 그때 손가락이 아닌 배경이 흐리게 보이는데 그 정도로 흐려진다. 미술을 공부하던 나에겐 아주 치명적인 결점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는가? 아니 남들 그림 한 장 그릴 때 10장 20장씩 그리며 연습하였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만의 방법을 획득하였다. 바로 끊임없이 눈의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정확히는 눈으로 관찰하는 사물에 변화를 주며 이곳저곳 이것저것을 끊임없이 관찰하는 것이다. 즉 길거리를 걷더라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이 아니라 보도블록을 보고 보도블록의 무늬와 갈라짐을 보고 나무를 보고 나무의 결과 나뭇잎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이 지닌 가방과 신발 끈 액세서리를 보고 늘어선 가게들을 보고 그 가게에 있는 손님들과 간판과 입구에 깨진 대리석을 보고 눈알을 쉴 새 없이 데굴데굴 굴리며 최대한 한 순간에 많은 것들을 보려고 애쓴다. 여러분은 눈앞에 있는 그것을 정말 본 적 있다고 생각하는가? 잠시 손과 눈을 멈추고 유심히 관찰해 보면 작은 흠집과 흐트러진 마감선 어제 먹은 김치찌개가 튄 얼룩 자국 등 평소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어쩌면 장애라고 불리는 것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덕분에 나는 남들보다는 많은 것을 보게 되었고 이를 손님을 응대할 때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물을 다 드셔갈 때쯤 새로운 물병을 가져다 드린다던지 피클이 다 떨어져 갈 때 자연스럽게 새로 가져다 드린다던지 주로 쓰는 손이 어느 손인지 파악하고 그쪽에 물건을 가져다 드린다던지 무언가 곤란해하거나 불편해하면 요청하기 전에 먼저 다가간다 던 지 등 흔히 말하는 '눈치껏 알아서'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 물리적인 행동이나 물건에서 그치지 않고 손님을 응대하는 멘트에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하루는 5명의 손님이 찾아오셨을 때였다. 손님들은 자리에 앉고 메뉴판을 보며 열심히 메뉴 조합을 선택하고 있었는데, 유독 한 손님이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잠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피곤의 바이브나 일이 많아서 피곤한 바이브가 아니었다. 그렇다 바로 전날 과음으로 인한 숙취에서 나오는 피곤의 바이브였다. 이를 알아차린 나는 이 손님의 테이블은 내가 주문받으러 가겠다 하였다. 이윽고 손님이 주문을 위해 우리를 불렀고 나는 우선 평소대로 주문을 받았다. 피자와 크림 파스타와 오일 파스타 류 를 주문하셨었다. 이때 나는 내가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손님께 이야기하였다. '지금 손님들께서 하신 선택들은 너무나도 훌륭하고 좋은 조합입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좀 느끼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아서 속이 좀 안 좋으시거나 느끼한 것을 선호하지 않는 분에겐 조금 힘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만약 저였다면 이 메뉴와 이 메뉴로 변경하거나 추가로 주문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메뉴는 프랑스식 토마토 스튜인데 이걸 제가 주방에 이야기하여 약간 매콤하고 국물이 자작하게 변경해서 준비해 드릴 수 있고, 두 번째 메뉴 같은 경우는 다른 데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오일 파스타가 아니라 국물이 자작하게 있는 파스타여서 속을 뜨근하게 풀어주거나 해장하기에 정말 좋은 메뉴입니다'라고 설명을 적극적으로 드렸다. 그러자 피곤의 바이브를 풍기던 손님은 너무나도 반가워하고 좋아하며 '난 저거 먹을래'라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이 테이블이 결제하러 오셨을 때 마침 그 손님이 결제를 하러 오셨고, 나는 카드를 받고 결제를 진행하며 슬쩍 '어떻게 메뉴는 좀 괜찮으셨나요? 해장은 좀 되셨습니까?'라고 이야기하였고, 손님은 크게 놀라 웃으며 '네 너무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 마침 딱 해장이 필요했는데'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난 '그게 제 일이니까요 다음에 오시면 또 맞춤으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고 그 손님은 너무 좋아하며 가게 명함과 곧바로 다음 예약까지 진행하고 가셨다.


이제 좀 감이 잡히는가? 이것이 뻔한 가식적인 멘트가 아닌 관찰을 통해 진실되게, 맞춤형으로 나오는 멘트의 힘이다. 그리고 저 손님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면 뻔하지 않는가? 일주일에 3-4번은 점심 식사를 하러 정확히는 해장을 하러 오시는 손님이 되었다. 어떤 분야의 서비스 직이던 결국 서비스직은 기계 대 인간이 아닌 인간 대 인간 즉, 사람 냄새가 나는 업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딘가 모르게 외로워하거나 속으로 혼자 쓸쓸해하는 손님들이 꽤나 많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의 사랑과 온정의 결핍을 조금씩 모두들 지니고 있다. 이것이 극대화되면 어떻게 되는가? 그럼 사소한 것 가지고 따지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따지는 바로 '진상 손님'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자신의 결핍을 인정치 못하고 드러내기 두려워 밖으로 표출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어쨌든 인간은 결국 관계로 이루어지는 사회 동물이다. 이러한 결핍과 감정들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누구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를 조금만 신경 쓰고 주의를 기울이면 보이는, 관찰하고 이 관찰한 것 들을 통해 약간의 진심과 온정을 곁들여서 톡 하고 건드려주면, 그 손님은 이 따뜻함은 절대 잊지 못하고 강한 인상을 주게 되며 다시금 찾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어딜 방문하던 모든 직원과 아르바이트 생들이 똑같은 표정을 하고 똑같은 멘트로 응대하고 누가 봐도 싫증 나고 부정적인 바이브를 뿜어내던 곳 들만 방문하다 우리에게 와서 인간적은 온정을 느낀다면 나 같아도 그곳을 다시금 찾아가고 단골이 될 것 같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도 결국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하지만 서비스업을 통해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고 열망이 있다면 무언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런 인간적인 온정은 지녀야 하지 않을까? 2024년 12월 31일 24년의 마지막 영업 날 저녁 시간이었다. 연말의 특수성으로 저녁까지 끊임없이 손님들로 붐볐고 식사를 포기하고 돌아간 손님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한 손님은 달랐다. 7명 정도 되는 단체 가족 손님이었는데 추운 날 2시간가량 계속 기다리며 마지막쯤 겨우내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셨다. 기다려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우리는 서비스를 잔뜩 챙겨주었었다. 이 손님이 결제하고 나서면서 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가 어떤 종류의 서비스 업이던 궁극적으로 가져야 할 목표와 목적이 아닌가 생각하여 손님이 한 이야기로 이번 글은 마무리한다. '저번에 왔을 때 음식의 맛도 너무 좋았는데 음식뿐 아니라 응대를 너무 잘해주셔서 여기 브랜드가 뭔가 계속 따뜻하게 기억이 났어요 그래서 저희 가족 다 같이 상의했는데 모두 좋다고 해서 다 같이 하는 2024년 1년 마무리, 마지막 저녁 식사는 몇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여기서 꼭 하자고 했어요 너무 좋았습니다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