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의 고향은 염전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염전 뚝은 자연이 내어준 식탁이자 우리 가족의 놀이터였습니다. 그곳에는 함초나물이 흔했고, 사람들은 이를 나문쟁이, 나문재라고도 불렀습니다. 이름만큼이나 소박한 존재였지만, 그 나물은 우리 삶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계절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풍경과 맛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할머니의 나문쟁이 나물
"염전 뚝에 나문쟁이 좀 캐 오너라." 할머니의 한마디가 떨어지면 우리는 양파망을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무거워진 양파망을 들고 돌아오면 할머니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 물에 담가두셨습니다. 그리고 삶아낸 나문쟁이를 고추장에 무쳐 내셨지요. 그 맛은 단순한 나물이 아니었습니다. 입안에서 퍼지는 짭조름함은 고향의 바람과 염전의 햇빛을 머금고 있었고, 독특한 식감은 우리 식탁 위의 추억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나문쟁이를 먹은 날엔 몸이 유난히 가벼워졌던 기억도 납니다.
누나와의 시간 여행
얼마 전, 누나와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 밴댕이젓갈과 나문쟁이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순간, 우리는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난 듯 신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양파망을 들고 염전을 누비던 어린 나와 누나, 고추장으로 버무려진 나문쟁이를 맛보며 환히 웃던 우리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세월이 흘러 꼬맹이였던 누나는 이제 다 큰 아들딸을 둔 엄마가 되었고,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기엔 어설픈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누나, 가족의 버팀목
하지만 누나는 언제나 우리 가족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그 작은 어깨에 가족 모두가 기대고 있는 듯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나, 그리고 어린 조카들까지 그녀는 묵묵히 지탱하며 우리를 지켜주었습니다. 지금도 혼자서 가정을 이끌어가는 누나를 보면, 그 강인함에 존경과 감사가 밀려옵니다. 내가 글로 무언가를 이룬다면, 가장 기뻐하고 자랑스러워할 사람은 분명 누나일 것입니다.
고향의 기억을 담아
함초나물, 나문쟁이, 나문재 이름만 들어도 고향의 풍경과 추억이 떠오릅니다. 장외리 나의 고향 제부도가 한눈에 보이던 그곳. 그곳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음식이며, 나의 어린 시절이 녹아 있는 소중한 기억입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고향의 맛과 가족의 사랑이 따뜻하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