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속도

고독

by 박성욱

외로움은 불시에 문을 두드린다. 완벽히 닫은 줄 알았던 창문 틈으로 바람이 스며들 듯, 아주 작은 틈새를 따라 나도 모르게 들어와 방 한가운데를 점령한다. 나는 처음엔 그 침입자를 결핍이라고 불렀다. 메우고, 덮고, 지워야 할 흠집쯤으로 여겼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그 틈을 그대로 두고 숨을 고른 적이 있다. 이상하게도 차가운 공기가 한바탕 휘돌고 지나간 후, 방 안의 공기는 전보다 부드러워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결핍이 아니라 여백이었음을. 그리고 여백은 새로운 온기가 스며드는 유일한 통로라는 사실을.

외로움 속에서 나는 내 체온을 재는 법을 배웠다. 빈 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사소한 온도 차에도 몸이 민감해진다. 창문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찬 기운, 손끝을 덮는 머그잔의 미지근함, 전등 빛이 잠깐 흔들릴 때 생기는 미세한 그늘. 행복이라 부를 만한 순간은 언제나 그런 미세한 진동으로 다가왔다. 반갑다고 선언하기도 전에 이미 내 언어와 몸짓에 배어 있었다. 고독 덕분에 작은 따뜻함이 기적처럼 확대되는 경험, 그것이 내가 얻은 역설적 선물이었다.


속도 또한 외로움이 가르쳐 준 교훈이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정신없이 달리던 시절,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숨이 찼다. 어딘가 맞지 않는 리듬이 들떠 있었고, 행복도 외로움도 ‘남이 정한 박자’ 속에서 귓가를 스쳐 지나가기만 했다. 그런데 발걸음을 절반으로 줄여 보니, 들리지 않던 소리가 귀를 건드렸다. 횡단보도 앞에서 멈칫할 때 들려오는 신호음, 카페 에스프레소머신이 내뿜는 습기 섞인 증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일어나는 바스락거림. 그 느린 박자 안에서야 비로소 ‘나만의 속도’가 만들어졌다. 외로움은 나를 멈춰 세웠고, 멈춤은 내 호흡에 맞는 리듬을 되찾게 했다.


결국 외로움과 행복, 그리고 삶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하나의 풍경 안에서 끊임없이 맞물려 움직인다. 틈이 있기에 공기가 순환하고, 온도차가 있기에 따뜻함을 느끼며, 흐름이 조절되기에 제 호흡으로 걸어갈 수 있다. 완벽히 채워진 순간은 멋져 보이지만 곧 진공 포장처럼 답답해지고, 완벽히 비어버리면 삭막한 바람이 몰아친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비어 있고, 적당히 채워진, 불완전함이 주는 완전함을 택하기로 했다.


다음 번 외로움이 찾아오면, 서둘러 문을 걸어 잠그는 대신 잠시 열어 둘 생각이다. 바람이 지난 자리엔 언젠가 또 다른 온기가 머물 테니까. 그리고 그 온기가 스며드는 속도에 맞춰, 내 삶도 조금쯤은 느려질 것이다. 그렇게 틈과 온기와 속도를 스스로 조율하며, 나는 오늘도 외로움을 삶의 어느 구석에 조용히 모셔 두기로 한다. 그것이 나를 더 단단하고 부드럽게, 무엇보다 나답게 만들어 주는 방법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