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첫 균열

의심의 칼날, 무너지는 순간

by 역마자

그날 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왕웨이라는 이름, 그날 카페에서 본 장면이 가시처럼 머릿속을 찌르고 있었다.

심장은 마치 얼음장 위를 걷는 듯, 불안과 의심으로 쿵쿵 울렸다.


샤샤의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차분히 과일을 깎으며 차를 준비했지만, 그 손끝이 살짝 떨리는 걸 나는 놓치지 않았다.

샤샤의 시선은 자꾸만 내 얼굴을 살폈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

그녀가 먼저 물었다.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그 안에 긴장감이 담겨 있었다.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숨을 몇 차례 삼킨 끝에, 결국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왕웨이… 그 사람, 도대체 누구야?”


샤샤의 손이 멈췄다.

오렌지를 자르던 칼이 공중에 멈춰 떨렸고, 그녀의 눈빛이 순간 얼어붙었다.

침묵이 방 안을 무겁게 짓눌렀다.


“…예전 남자친구야.”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관계도 아니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 한켠이 쿵 무너져 내렸다.

나는 애써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럼 왜 숨겼어? 왜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샤샤의 표정이 단숨에 차가워졌다.

“그럼 너는?”

그녀의 눈이 나를 정면으로 찔렀다.

“너야말로 다 솔직했어?”


“무슨 소리야…?”

숨이 막히는 듯 답답함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너, 한국에 있던 여자친구 얘기. 회사 사람들 다 알고 있던데.”

샤샤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날카로워졌다.

“너희 회사 직원들은 네가 아직도 그 여자와 연락하고 지낸다고 알고 있어. 왜 그 얘기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그 말은 내 머리를 그대로 강타했다.

숨기고 싶었던 과거, 아직 완전히 끊어내지 못한 감정의 흔적이 그녀의 입을 통해 칼처럼 내 가슴을 찔렀다.


“그건… 그냥 오래된 일이야. 이미 그녀와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어.”

나는 설명을 했지만, 그녀는 나의 말을 믿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샤샤는 비웃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 그럼 왜 숨겼어? 결국 우리 둘 다 똑같잖아. 너도 나한테 너의 과거를 이야기 하지 않았어.”


그녀의 말은 내가 묻고 싶었던 과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라고 이야기 한들 그녀는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더는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숨이 막히듯, 어색한 침묵이 우리 사이를 갈랐다.


“우리… 이쯤에서 끝내자.”

샤샤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지만, 그 눈물마저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샤샤는 등을 돌려 방 안으로 사라졌다.

나는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온몸이 텅 빈 듯 공허했고,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 있었다.


집을 나와 상하이의 밤거리를 걸었다.

네온사인은 여전히 찬란히 빛났지만, 그 불빛은 잔인할 만큼 차갑게만 느껴졌다.

우리의 균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틈이 되어, 내 안을 천천히 삼켜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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