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 ‘는 말은 누군가를 향해 갈망하는 마음이기보다는 오히려 나에게만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다급한 신호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상을 보내야 하거나, 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해 가슴에 채워야 할 빈 공간이 없을 만큼 풍요로울 때 외롭다는 감정과는 애쓰지 않아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없을 때, 차질 없이 계획대로 진행되던 일에 실패했을 때, 누군가 의도 없이 던진 한마디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때,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한 것이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제어할 수 없는 감정들의 침공에 거리유지는 실패하고 외로운 감정에 휩싸여 버린다. 이성의 작용을 마비시키고,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상의 모든 일로부터 무기력해지면 깊은 내면으로 침투해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나의 모습을 닮은 다양한 자아가 역할을 잃어버려 깊은 내면 어딘가로 침몰해 버린다.
바로 서지 못하는 유약한 마음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서 출발하고,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비참하고 볼품없는 ’나’에게서 영원히 거리를 유지한 채 버텨내고 있었음을 무의식에서 튀어나오는 ‘외롭다 ‘라는 말에서 알게 되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루어 낼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불행의 자의식이 커지면 두 어깨 위에서 놓인 바위의 무게를 간신히 버티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그 무게가 곱절은 더 무겁게 느껴진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고 더 늦기 전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나에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바라지 말고 누군가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나를 사랑하면 된다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서점에서 박완서 작가님의 장편소설 [오만과 몽상]을 마주한 날, 제목에 심쿵했고, 표지에 심드렁했다. 박완서 작가님을 좋아하지만 많은 작품을 읽지는 않았기 때문에 박완서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을 집으로 데려왔던 기억이 난다.
”매국노는 친일파를,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탐관오리는 악덕기업인을 낳고, 악덕기업인은 현이를 낳고,
동학군은 애국투사를, 애국투사는 수위를, 수위는 도배장이를 낳고, 도배장이는 남상이를 낳고,... “
압도적인 문장 하나에 이 소설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 같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두 남자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절친이었던 현이와 남상이가 삶의 굴레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인간적 고뇌를 그려내는 흥미롭고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이 책의 서문을 읽기 위해 책을 가까이 둔다.
“오만과 몽상의 뒤끝이 비굴과 현실추종이란 정석으로 달리지 않도록 애썼다. 나는 내가 낳은 두 젊은이를 사랑했기에 그들이 오만의 시기를 넘기고 겸허를 얻기를, 몽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라고 지켜보았다.”
우연히 마주치는 소설 속의 한 문장,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마음을 뒤 흔드는 문장을 이 소설에서 만났다. 어쩌면 내 삶의 작은 빛이 되어주는 놀라운 문장을 만나기 위해서 소설을 읽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다 읽고도 앞으로 다시 돌아와 서문에 오래 머물렀다. 지치거나 힘들 때마다 들춰보고 위로받았던 문장, 마치 내 삶을 걱정하며 용기를 주는 살뜰하게 딸을 챙기고 지켜주는 엄마의 목소리처럼 이 문장을 가슴에 묻어 두었다. 외로움을 끊어내지 못해 방구석으로 몸을 구겨 넣고 싶을 때,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놓았는지 무엇을 외면했는지 혹독하게 꾸짖는 목소리에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서기도 했다. 결국 나는 겸허하지도 용기를 장착하지도 못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따뜻한 관심과 위로의 불씨만 남겨둔 셈이다.
퇴사 후 건강을 회복하는 동안 없던 병들이 생겼다. 어깨는 내 통제를 벗어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고, 책을 읽은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어깨와 목 주변의 묵직한 통증은 강제로 나를 멈춰 세운다.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완벽히 준비된 병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옷을 갖춰 입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몸에 꼭 맞는 정장을 입고 항상 구두를 신고 다녔다. 내 몸 사이즈 보다 조금 큰 사이즈를 사면 품과 허리가 크고 몸에 맞게 사면 길이가 짧아지는 데다 상체가 마르고 약한 탓에 몸 사이즈보다 조금 큰 사이즈를 구매해서 까탈스럽게 몸에 꼭 맞게 줄여 입었다. 지금은 제대로 맞는 옷이 없을 지경이다. 나를 단단하게 조여주는 내 안의 힘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차선책으로 빈틈없이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끝없는 긴장과 압박 속에서 딱 맞는 옷으로 내 몸을 구속시켜 두는 것은 어리석음에 대한 작은 항변이고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었다. 똑같은 자세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누군가의 기대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애를 썼다.
퇴사 후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직장을 다니는 동안 항상 하고 싶은 공부를 병행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입사와 동시에 나는 이미 퇴사준비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마음은 항상 불확실한 미래에서 허우적거렸지만 좋아하는 것들에 빠져있었고, 마음이 아프기 전의 나로, 몸이 아프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지나버린 시간 속에서 나는 항상 ‘지금, 이 순간‘을 외면해 버렸다.
얼마간의 강제적인 휴식기를 지나고 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한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쏟아날 거라 생각했지만 나의 큰 착각이었다. 얼마간의 휴식으로는 다시 설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망가져 있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알게 되었고, 외부를 향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워가는 동안 몸과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져 가고 있었다. 어깨가 불편한지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어깨에 다시 통증을 느끼기 시작할 때 목까지 문제를 일으켜 버렸다. 끝까지 부여잡고 있던 알량한 긴장마저 사라지니 몸과 마음이 어지럽게 뒤틀려 버렸다. 외로움이 밀려올 때 나는 나를 만난다.
굳어버린 몸과 마음이 다시 말랑해 질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조급해 지지말자’는 말만 되뇔 뿐이다. 홀로 남은 시간 속에서 문득 외로움이 몰려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향한 따뜻한 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이상 외롭지 않기 위해 나를 바로 세우는 힘이 필요하다고 속삭여 준다. 그동안 살아온 것과는 정반대로 살아보라고…
’ 사랑’이라는 말을 아직도 잘 모르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