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자의 작은 기록

by Re나

새벽의 기척은 언제나 작게 깨어난다. 어둠과 빛의 경계가 어깨를 맞대고 서성일 때,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킨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반복해 온 호흡이건만, 어느 날의 들숨은 또 다른 첫 경험처럼 낯설고 귀하다. 흙냄새가 스며든 공기, 아직 식지 않은 어둠의 체온, 그리고 그 사이에서 조용히 깨어나는 나의 마음. 나는 그 미묘한 틈에서 오래 머문다.


알아차림은 나에게 특별한 기술이라기보다, 끝없이 흘러가다 문득 돌아본 내면의 강과 같다. 강물은 한 번도 같은 모습으로 흐르지 않지만, 그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는 근원을 드러낸다. 수행을 오래 이어온 이들은 안다. 이 길은 어떤 화려한 깨달음이나 번쩍이는 경험보다, 하루의 마음이 얼마나 부드러워졌는지를 알아차리는 데서 깊어진다는 것을.


어느 계절엔 한참을 앉아 있어도 마음의 물결이 도무지 잦아들지 않았고, 욕심이나 두려움이 떠오르면 억누르거나 밀어내려 하던 젊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겹겹이 쌓이면 마음은 이기려 들수록 더 요동친다는 것을. 다만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가장 깊은 친절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불안은 언제나 그림자처럼 먼저 몸의 가장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심장이 먼저 흔들리고, 가슴은 미묘하게 수축하며 낯선 어둠의 결이 서늘하게 깔린다. 공기는 짧아지고 세상의 소음은 점점 멀어지는데 정작 내 마음만은 더 가까이, 무게를 가진 실체처럼 들러붙는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설명하기 어려운 촉감에 가까운 어떤 것이어서, 이유를 묻기도 전에 이미 나를 감싸며 조용히 결을 바꾸어놓는다. 공황은 그 불안이 한순간 깊어진 형태처럼, 숨의 문턱을 닫아버리고 나를 내 몸 바깥으로 밀어내려 한다. 들숨은 세상을 다시 받아들이겠다는 조용한 결의지만, 공황의 순간에는 그 결의마저 흔들려 때로는 받아들일 힘이 부족해진다. 날숨은 내려놓음의 움직임이지만, 그마저 쉽지 않아 가슴 한가운데에 무거운 문이 잠긴 듯 버거울 때가 있다. 들숨은 내게 닿지 못하고, 날숨은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채 딱딱하게 얼어붙은 가슴에 걸려 떨린다. 감정은 형태를 잃고 흘러들어와 마음의 바닥을 급하게 흔들어놓는다. 불안이 거친 파문처럼 가슴 안쪽에서 퍼져나가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문턱도 없는 문을 휙 열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다. 그 두려움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내면에서는 번개처럼 빠르게 퍼지며 모든 감각을 위협의 방향으로 기울게 만든다. ‘외로움과 무서움이 이런거라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는 그러나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어떤 영역은 투명하게 어딘가에 존재하고 나는 무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힘없이 주저앉는 볼썽사나운 불안과 공포의 흔들림은 언제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나는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다. 온몸이 한동안 공중에 매달려 있다가 툭하고 떨어져 발바닥이 서서히 현실에 닿는 묵직한 느낌, 무너질 것 같던 마음이 조심스럽게 형태를 되찾고, 불안이 휘어놓았던 생각들은 물결처럼 잔잔해져 제자리로 가라앉으면 마음에서 흘러넘친 물결을 손끝으로 거두어 들인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가장 작은 감각이 나를 다시 불러 낼 수 있는 것은 의식적인 호흡의 힘이 작동하고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코끝을 스치는 차고 힘없는 공기, 폐가 아주 천천히 다시 움직이는 미세한 탄력,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미묘하게 피어오르는 조용한 따뜻함. 그 작은 감각들이 나를 붙잡아 흩어지려던 마음의 조각들을 아주 천천히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불안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불안이 나를 뒤흔드는 그 순간에도 다시 들이쉴 공기 한 줌을 찾고, 그 조그만 숨의 불빛을 따라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결국 그 미세한 리듬에 기대어 아슬아슬하지만 아름답게 하루를 건너간다.


대지를 스치는 바람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으며, 도시의 바람, 산에서의 바람, 숲의 바람, 바다의 바람은 세기도 건조함도 시원함도 부드러움도 다 다르다. 바람은 지나갈 뿐, 어떠한 흔적도 요구하지 않으며, 꽃잎을 스치고, 물결을 흔들고, 누군가의 뺨을 잠시 식히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진다. 나는 호흡을 바라보는 긴 시간동안 그 바람을 닮고자 했고, 함께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싶었다. 흔적을 남기는 삶보다, 존재 자체가 잔잔함을 건네는 삶이기를.


때로는 알아차림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고, 때로는 한없이 부드럽게 만들었다. 앉아 있는 동안 불쑥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들, 말하지 못한 상처들, 스스로도 알지 못한 욕망들이 물 위의 그림자처럼 지나갔다. 나는 그것들을 붙잡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구나." 하고 마음속에서 속삭였다. 그렇게 마음의 뿌리는 조금씩 깊어지고, 나를 움직이던 불필요한 힘은 서서히 풀려나간다.


알아차림의 길은 한 번도 나를 완성된 존재로 만들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더 미완의 자리로 이끌었다. 미완의 마음은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기쁨도 슬픔도 불안도,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파도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리. 나는 매일 그 자리로 천천히 돌아가는 법을 배운다. 저녁이 내려앉으면 하루 동안 흔들렸던 일들이 부드럽게 가라앉는다. 다시 앉아 숨을 고르면, 들숨과 날숨 사이로 작은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은 내가 얻은 깨달음의 증표가 아니라, 멈춰 서 있는 순간만이 건네주는 은은한 선물이다. 그리고 나는 안다. 수행의 길은 멀리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 작은 빛 속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결심이라는 것을. 다시 내일에 희망으로.


나는 오늘도 그 빛 앞에 조용히 앉는다. 거창한 해답을 바라지 않고, 어떤 성취도 기대하지 않으며. 다만 마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준다. 그 순간, 세상은 크고도 잔잔한 고요로 확장된다. 고요의 등불 아래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천천히 숨을 들이킨다. 평화는 멀리서 오지 않는다. 바로 이 자리, 이 순간, 이 한 호흡 속에서 이미 피어나고 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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