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의 커트 전문점.
화장실 가는 것조차 눈치를 보며 갈 만큼 바쁜 하루였다. 며칠 전 삐끗한 목 때문에 목 보호대까지 하고 나온 나는 몸도 자유롭지 않아 일을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날따라 꼬마 손님들도 유난히 많이 다녀갔다.
유독 시끄럽고 번잡스러움에 민감한 나는 몇 배로 더 진이 빠지는 하루였다.
마감 시간이 한 시간 남짓 남아서야 한숨 돌리며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앉았더니 따뜻한 차 한 잔이 먹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니 아침에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일을 시작했다. 오픈전부터 문 앞에 기다리시는 고객님들이 많아서부랴부랴 일부터 시작하느라 차 한잔 마시지 못했다.
그런데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한숨 돌리며 앉아 보니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생각이 났다. 그렇지만 시간도 늦었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마음은 넣어두고 같이 일하는 선생님과 그날 하루 에피소드를 나누며 청소를 시작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느낌이 별로다.
촉이 안 좋다.
뭔가 싸하다.
누군가 밖에서 들어올 거 같은 기분에 문을 등지고
앉아 있던 나는 뒤를 돌아 출입문을 봤다.
밤이 되어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누군가 유리문 가까이 얼굴을 대고 손으로 차광막을 만들어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순간 내 얼굴이 찌그러졌다.
입에서는 험한 소리가 나오기 직전이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리고 먹고 싶은 커피도 뒤로 한 채
어서 마감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고객이 오시는 거 같아서 짜증이 났다.
‘또 누구야~!!! 오늘은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은데 ‘
순간 문이 열리고 들어오신 분은 늘 그렇듯 약간의
미소와 수줍음 모드를 장착하신 내가 정말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고객님 중 한 분 이셨다.
늘 말수가 없으시고 점잖으시며 약주 한잔하신 날엔
몇 마디 무뚝뚝하게 건네고 가시며 꼭 나가실 때 수줍게 미소 짓고 가시는 60대의 나의 최애 고객님~!!
일그러지던 짜증 섞인 내 얼굴은 밝은 미소로 번진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자마자 성큼성큼 내 자리로 가서
털썩 앉으신다. (미용실에서는 가위나 이발기 같은
작은 기구들은 전부 디자이너 개개인의 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기 장비가 준비된 각자의 자리가 따로 있다)
어머? 그런데 그날은 앉으시자마자 말씀을 늘어놓으신다.
-오늘 하루 종일 바쁘시더니만 내가 오늘 여기 세 번째 왔어. 밖에서 들여다보고 계속 바쁘길래 집으로 그냥 돌아갔어. 지금도 마침 마트에 계란 사러 가려다가
혹시나 하고 들여다보고 아무도 없길래 얼른 들어온
거야. 아까는 아기들도 많고 어르신들도 많고 선생님
힘들어 보여서 그냥 갔지.
-에구 그러셨어요? 다녀가신 줄도 몰랐어요….
지금 다행히 잘 오셨네요~
‘사장님 오늘 약주 한잔하셨나? ’
오늘따라 말씀을 신나게 하시는 게 오랜만이라 나도
덩달아 지쳐있던 마음에 힘이 났다. 늘 나를 배려해
주시는 따뜻한 마음에 지쳐있던 하루가 녹아내린다.
오늘따라 말을 많이 하신 고객님과 이것저것 대화를
이어가다 어느새 커트가 끝났다.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신 고객님은 언제나 그렇듯 수줍게 커트비 만원 한 장을 내미신다.
-아이고 오늘도 고생하셨어
-네 ~ 감사합니다
건네받으며 인사를 하는 순간 또 만 원 한 장을 더
주시며
-추운데 저기 계신 선생님이랑 옆집 카페에서 따뜻한 거 한 잔씩 사다 드시면서 마무리하셔~
하시곤 감사하다고 인사할 틈도 주시지 않고 쌩 하니 수줍게 나가셨다. 마음이 뭉클했다.
고객님이 준 만원 때문에 아니었다.
언제나 무뚝뚝 수줍음 많은 고객님은 나를 늘 배려해 주셨다. 차 한잔 먹고 싶었던 내 맘은 어찌 아셨는지
따뜻한 차 한 잔 하고 가라며 건네주신 그 마음이 그날 하루의 피로를 모두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나는 힘들어도 내가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도더 많은 고객에게 내 마음을 담아 서비스해야겠다.
물론 모든 고객이 이분 같진 않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