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용실에 방문한 진상고객가족

by 은나무


미용실의 주말은 대부분 하루종일 바쁘지만

가끔은 중간중간 고객들이 끊기는 시간이 있다.


지난주 주말도 그랬다.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나고 한숨 돌리려고 할 때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4인가족이 우르르 들어왔다. 순간 나는 긴장했다.

왜냐하면 지난번 커트를 하며 혼을 쏙 빠지게 했던

기억에 남는 남자아이들의 가족이었다.


매장에 점장님이 계시지 않아 다음 책임자로서

이 아이들을 어찌할지 순간 고민하고 있었다.

(돌려보내야 할지 힘들어도 참고 머리를 깎아줘야 할지 그러다 손님들이 몰리면 또 이 아이들 때문에 다른

고객들이 오래 기다려야 할 거 같아서 여러모로 결정을 잘해야 했다.)


나는 머릿속을 이리저리 굴리며 손님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어느 분이 자르실 거예요?


-저만요


-아버님만 하실 건가요?


-네


휴~ 다행히 아이들은 하지 않고 아빠만 커트와 염색을 하러 왔다고 했다. 애써 싫은 소리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 역시 이 가족 이날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작은 매장, 바쁜 주말에 아빠 머리 하러 온 가족이

우르르 온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고객들이 대기하며

앉아있는 소파를 전부 차지하고 있는 거 아닌가?


아기도 아닌데 초 3,4 학년 되는 아이중 한 명은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고 또 다른 한 명은 기우뚱하게 앉아 있다. 그 와중에 엄마는 아무런 제재도 없이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티브이도 자기들 마음대로 만화를 틀어버렸다.


여기 미용실이 마치 이 가족들의 전유물이 된듯하다.


아빠는 염색까지 해야 해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두 아들은 가게가 떠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거나

투닥투닥 다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엄마 아빠 어느 누구도 한마디 안 하고 신경도 안 쓰고 있었다.

점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왜 아이들을 훈육하지 않는 걸까?


지난번에도 그랬었다.

아이들이 머리를 깎는 내내 움직임이 심하고 산만했다.

온갖 난리를 쳐도 부모는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엄마라도 한마디 거들면 화가 덜 날 텐데 움직이는 아이들 때문이 아니라 가만있는 부모들 때문에 화가 점점 치밀었다.


겨우겨우 가만히 있어라 단속을 해가며 진땀을 쏙 뺐던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아까 문을 열고 들어올 때도 머릿속이 매우 복잡하던 참이었다.


그때 마침 다른 고객님이 오셨다.

나는 얼른 내 자리에 고객을 안내해서 커트를 시작했다. 다른 손님이 있어도 그 민폐 가족들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내심


‘진상가족 진상가족 다음에 애들 머리 절대로 안 깎아 줄 거야 절대로 깎아주지 말아야지 ‘


라고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렇다 쳐도 다른 손님까지 있는데 아무 거리낌 없이 있는 가족들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아빠 염색이 다 끝나고 나서야 가게를 떠났다.

마지막까지 카운터에 있는 어린 아기들 접객용 사탕까지 한주먹씩 쥐어가는 얄미움을 남기며 떠났다.


그 가족들이 나가자마자 선생님이 막혔던 숨을 내뱉듯 참았던 말을 쏟아낸다.


엄마아빠가 왜 저러냐,

여기가 자기들 집이냐 애들이 너무 예의가 없다.

티브이는 왜 맘대로 트냐,

정말 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속사포 같이 쏟아 내고 있었다.


-선생님 기억 안 나세요? 지난번 선생님 하고 저하고 아주 진땀 뺀 녀석들이에요~

온갖 난리를 치는데도 엄마 아빠는 한마디도 안 했던 가족이에요~ 오늘 애들 자른다고 하면 뭐라고 하고

돌려보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잘 됐어요. 저도 다음엔절대로 안 해줄 거예요.


오는 손님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냐마는 나는 도저히 해줄 기운이 없다.


-저는 그렇게 말 못 하는데 …. 아 일단 하다가 난리

치면 그때 말해볼까 봐요..


-선생님 걱정 하지 마세요 저랑 있을 땐 제가 알아서 말씀드릴게요. 점장님이랑 근무하실 땐 점장님께 맡기세요.


-선생님이 그렇게 정리해 주시면 저야 너무 고맙죠


둘의 대화는 이렇게 민폐가족 거부하기 방법으로 마무리되었다.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한 번 더 찾을까 고민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시는 찾아오지 않게 할까

고민하는 일도 다 있다니 참 어이가 없긴 하지만

싫어도 너무 싫은데 어쩌나...


찾아오시는 고객들을 당연히 감사하게 생각하며 맞아 드리는 게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지만 아무리 서비스 업종이라 해도 사람과 사람 간에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키즈존이 생겨난 이유를 봐도 그렇다.

아이들의 행동 때문에 위험한 일이 생겨도 부모들의

막무가내 아이를 두둔하는 행동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거나 소란스러운 행동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니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니지만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전체의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경우라고 생각한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이미 초등학생 고학년이고 부모님 혼자 데려온 것도 아니었고 엄마 아빠까지 함께 하는

상황에서 소파에 드러눕고 떠드는데 제지하지 않는

상황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


뭐 내 맘에 안 든다고 무조건 고객을 내 칠 수는 없지만

아닌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지키고 보호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하루였다.


집에 돌아간 나는 그날 받은 열을 삭이지 않은 채 괜히 두 아들들을 잡도리했다.


어디 가서 예의 없이 행동하지 말아라.

인사 잘해라 갖가지 잔소리 폭탄을 퍼부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엄마가 퍼붓는 잔소리에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은 오늘 엄마가 왜 이래 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keyword
이전 09화경력 30년 된 옹고집 미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