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윤서는 모처럼 늦잠을 자고 집을 나섰다.
간단히 저녁거리를 사려고 동네 마트에 들른 것이다.
운동복에 머리도 대충 묶은 차림.
거울을 볼 때마다 ‘오늘은 아무도 만나지 않겠지’ 싶은 날이었다.
카트에 라면과 두부를 넣는데,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장님, 장 보러 나오셨어요?”
윤서는 동작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자, 선글라스에 모자를 눌러쓴 도현이 장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안에 담긴 건 치킨너겟, 콜라, 아이스크림.
“… 여긴 왜요?”
“저도 사람인데 장 봐야죠.”
“여기까지 와요?”
“윤서 씨 동네라서요.”
태연한 그의 대답에 윤서는 어이없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둘은 어쩔 수 없이 나란히 장을 보게 됐다.
도현이 갑자기 라면 진열대를 가리켰다.
“저도 라면 좋아하는데, 실장님은 어떤 거 사세요?”
“그냥 아무거나요.”
“그럼 오늘은 같은 걸로 살래요. 그래야 끓여 먹을 때 생각나죠.”
윤서는 장난처럼 말했을 뿐인데, 도현은 진지하게 같은 라면을 카트에 담았다.
“이제부터 이건 ‘우리 라면’.”
“그런 말 좀 하지 마요.”
“싫어요. 듣는 제가 좋은데.”
윤서는 괜히 발끝으로 카트를 밀며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쿵 하고 울려왔다.
계산대 앞에 서자, 계산원이 윤서를 보고 물었다.
“남편 분이랑 같이 오셨어요?”
“네? 아, 아니에요!”
윤서가 손사래를 치며 당황하는 사이, 도현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에요.”
계산원은 피식 웃으며 봉투를 건넸다.
윤서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도현을 흘겨봤다.
“왜 그런 말을 해요?”
“틀린 말 아니잖아요. 아직은 아니니까.”
집 앞 골목까지 같이 오게 됐다.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도현이 말했다.
“생각보다 잘 어울리네요, 우리. 장보고 집에 들어가는 거.”
“말도 안 돼요.”
“아니에요. 제겐 제일 로맨틱했어요.”
윤서는 현관 앞에서 장바구니를 받아 들며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고마워요.”
“내일도 고마울 거예요. 제가 또 나타날 거니까.”
도현은 장난스럽게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윤서는 현관문을 닫고 기대앉았다.
마트 봉투 안에서 ‘우리 라면’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설레는 게… 맞아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