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곳에 들어간 날

by 은나무


눈발이 날리던 어느 날.


엷은 스타킹에 작은 키를 조금이라도 커 보이고 싶어
10센티 힐을 신었다.
당시 유행하던 에이치라인 정장 스커트
키를 보안하고 나이 들어 보이려 뽕을 잔뜩 넣은 올림머리.
안경을 벗은 얼굴에 짙은 스모키 화장.
흐릿한 눈으로 낮에 통화했던 그 장소에 섰다.



도시 번화가 끝자락.
대형 1종 노래방.
술이 있고 아가씨가 있고,
시간당 2만 원이라는 값으로 분위기를 파는 곳.



나는 그 문 앞에 혼자 서 있었다.
친구도, 기대도, 선택지도 없이.



저 계단만 오르면
나는 지금까지의 내가 아니게 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떤 시간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눈발은 점점 거세졌고
머리가 흐트러지기 전에
계단을 올랐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조명이
추위에 떨던 나를 감싸줬다.



“전화 주신 연이 씨 맞죠?”


“네.”


“이쪽으로 오세요.”



작은 룸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차분하게 묻는다.



나이.
사는 곳.
경험 유무.



나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술은 안 마셔도 된다 했고
깊은 터치는 거절할 수 있고
싫으면 방에서 나오면 된다고 했다.
남자에게 낮에 들은 이 말들을 다시 확인했다.



남자는 그렇다고 했다.
일은 쉽다고 했다.
진상도 없다고 했다.
“여긴 룸살롱 같은 데 아니에요.”



그리고 나를 대기실에 데려갔다.
담배연기가 허공에 매달린 곳.
어딘가 지쳐 보이는 여자들이
고스톱을 치거나, 화장을 고치거나,
삼삼오오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남자는 나를 여자들에게 소개한다.
“오늘 처음 왔어요. 잘 챙겨줘요. 이름은 연이”
이 말을 남기고 이내 사라졌다.



나는 쭈뼛쭈뼛 소파에 앉았다.
긴장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몇 살이야?”


“…스물한 살이요.”


“어? 다연이랑 동갑이네!”


단발머리, 새침한 얼굴.
부산 사투리.
그 아이가 다가온다.



“이름이 뭐고?”


“… 연이.”



그렇게 나는
눈치만으로
생존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웨이터가 문을 열고
이름을 부른다.



“연이까지, 나와.”



언니들을 따라 방에 들어갔다.
큰 테이블, 디귿자 소파,
남자들이 상석을 중심으로 양옆에 앉아 있었다.



흐릿한 눈으로
방을 스캔했다.
무엇을 본 건 아니었다.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기 위한
나만의 의식이었다.



상석의 남자는 손가락으로
우리를 자리 배치한다.
그리고 나를 자기 옆에 앉힌다.
오늘 초짜 티가 났던 거겠지.



언니들 따라
웃고, 탬버린 치고,
몸을 흔들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때였다.



누군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렸다.
비명처럼 짧게 튀어나온 숨.
본능처럼 남자의 목을 감싸 쥐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던지듯 넘긴다.



겁이 뼛속까지 떨렸다.



언니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만해! 오늘 처음 나온 애야!”


“울면 안 나온다고! 내려놔!”



남자들은 웃으며
슬슬 나를 내려줬다.



그들만의 신고식.
누군가에겐 장난.
나에겐 공포.



눈물은 사치였다.
빨리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그렇게,
그날 밤 모든 문이 내 안에서 꽉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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