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가수 마야의 진달래꽃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작고 마른 체구에서 뿜어내는
칼칼하고 시원한 목소리가
내가 가진 매력이었다.
남자는 이 노래를 듣고 싶어
친구와 함께 왔다며
자리에 앉자마자
나에게 노래를 시켰다.
그곳은 커다란 TV 화면이 붙어 있는 노래방 기계,
자줏빛 꽃무늬 소파가 디귿자로 놓여 있고
가운데 테이블엔 위스키와 과일 안주가 있다.
조명은 서로의 얼굴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어두움.
담배 연기가 천장에 걸려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 남자와 그의 친구,
그리고 나와 함께 들어온 언니 한 명이
담배를 피우며
내 노래를 듣고 있다.
국민학교 3학년.
특별활동 시간이 생겼을 때
나는 합창단에 손을 들었다.
수줍고 부끄러움 많았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달랐다.
갑자기 용기가 솟고 내 목소리는 교실을 가득 채웠다.
합창단 선생님은
3학년은 보통 알토를 시키지만
너는 소프라노라고 앞줄에 세워주셨다.
6학년 때 롤링페이퍼 속 아이들의 칭찬은
인사보다 명령처럼 들렸다.
성악가가 되어라.
가수가 되어라는 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중학교에서 불량학생으로 낙인찍힌 후에도
학생부였던 음악 선생님도 수업시간엔 늘 같은 말을 했다.
“꼴통짓은 해도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해.”
축제엔 늘 무대에 섰다.
노래하고 춤추고
그때만큼은
나는 나였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탁받은 날도 있었다.
가사를 제대로 외우지도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중3 때였다.
처음 콘서트를 봤다.
올림픽경기장.
수많은 관중들.
그 앞에 공연하는 화려한 가수들.
나도 언젠가
저기 무대 위에 있을 거라
상상하고 꿈에 담아
마음으로 다짐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노래를 팔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나를
내가 꿈꾸던 미래를
증명하던 내 노래는
이제 살아남기 위한
도구가 되어 있었다.
기쁨도, 설렘도,
표정도 없이
담배 연기 자욱한
좁은 방에서
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가 늘 좋아하던 노래는 이제 더는 부르고 싶지 않아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