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의 털에 박힌 유리를 찾는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었다.
두렵고 비참했다.
그때의 나는 늘 이렇게 생각했다.
모든 인생의 결과는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그래서 모든 것은 결국 나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고 그리 믿었다.
그날 그 밤의 비참한 모습도 내가 선택한 결과에 따른 대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를 따라 서울로 왔고
그의 관심에 반응했고 그를 듬직하다 여기며
사랑이라 믿었다.
그 결과 지금 이 상황도 내가 책임져야 하는법.
나는 그때 선택할 수 있었다.
그의 곁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을....
그러나 그땐 벗어날 용기가 없었다.
나 역시 이미 그에게 많은걸 의지하고 있었고
다시 세상밖에 홀로 서있기 두려웠다.
새벽 내내 깨어진 유리창과 난장판이 된 바닥 그리고 혼자 정신없이 자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 뒤꿈치에서 피가 나는 걸 보았지만
그냥 그대로 뒀다.
두려움 속에서도 작은 오기와 내 나름 성질도 부리는 중이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네가 한 행동을 니눈으로 봐라.
네가 무슨 짓을 나에게 했는지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침이 되고 또 한참이 지났다.
그가 부스스 자리에서 깼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이게 다 뭐야? 설마 내가 그런 거야?"
"......."
"나 기억이 전혀 안나. 어제 룸으로 박사장이 직접 왔길래 아가씨 옆에 앉히고 접대 좀 하느라고 마셨는데...
폭탄주 세잔 먼저 먹고 먹어서 그런가 기억이 안 나.
집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어."
"집에 잘 왔고 어제 오빠가 얘기 좀 하자며 술 취해서
나를 앞에 앉혀놓고 너 어디 절대 도망가지 말아라.
너 하나 찾는 거 일도 아니다. 오빠 떠나봐야 예전처럼 남자한테 웃음이나 팔면서 밑바닥에서 사는 팔자밖에 더 있냐고.. 그리고 네가 남자 만나봐야 끼리끼리라고
웨이터 놈들이나 만나서 웃음판돈 퍼다 주고 연애나 하다
병신 같이 살 꺼라며 할 말 못할 말 한 거 기억이 안 나?"
"그러더니 눈 풀리고 정신줄 놓더니 침대 누워서 잠도 안 자고 한참을 중얼거리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갑자기 발로 깬 거야. 한번 치니까 멀쩡했고 두 번치니까 금 갔어. 일부러 깨트릴 작정이었는지 마지막에 욕을 더 해가면서 있는 힘껏 찍어 내리더라?"
"에이 내가 연이 너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설마 그 얘긴 네가 보탠 거지? 이참에 이걸 핑계로 나 군기 잡아 보려고 그러는 거 아냐? 근데 나도 미친놈이지
발로 이걸 어떻게 깼냐. 이 두꺼운 걸...
너랑 콩이 다친데 없어? 많이 놀랐지?"
그는 이 상황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정신이 아득한 척이 아니라, 이미 자기 안의 괴물을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연이야, 진짜 미안하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나도 기억이 하나도 안 나.”
그는 눈을 피하며 중얼거렸다.
“다시는 안 그럴게. 얘기하지 말자. 내가 다 정리할게.”
말은 사과였지만 그 표정엔 들킨 사람의 초조함이 자리했다.
그리고 필요한 건 당신의 상처가 아니라,
‘입막음’
처럼 느껴졌다.
“너랑 콩이는 잠시 나갔다 와. 올림픽공원 한 바퀴 돌고 와.
내가 다 치워놓을게.”
그는 또 내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해줬다.
콩이를 데리고 나와 집 앞 동물 병원부터 갔다.
다행히 별 문제는 없어 보인다고 했고
우리는 올림픽 공원으로 걸어갔다.
앞서가는 콩이의 뒷모습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쩌다가 내가 이곳에 와서
이선우를 만나 자유를 통제당하며
폭력적인 사람과 하루하루 살고 있지?
어제 분명 룸에서 접대했으면 룸 언니들 들어갔을 테고 지난번 슬쩍 보니까 노는 물이 정말 다르던데...
직원이든 뭐든...
이선우 는 일하는 아가씨들한텐 전혀 감정 없다지만
나는 그 장면이 떠오르니 기분이 불쾌해졌다.
나는 통제당해야 하고 그는 자유했다.
떳떳하다는 이유로....
나는 점점 이선우 섬에 고립되어 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은 말끔했다.
깨진 유리,
흩어진 술 냄새,
살벌했던 새벽.
다 없었던 일처럼.
그는 다시
내가 기대던 다정한 남자 역할로 돌아와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다음에 또 그러면 신고해도 된다.
입으론 이렇게 말하면서
눈빛은 두려움으로 절대 벗어나지 말라고
명령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난 또 스스로를 속였다.
“괜찮아. 새벽에 일은 … 실수였을 거야.”
그는 기분전환이라며 저녁에 출근하지 않고 나를
미사리 라이브카페로 데려갔다.
음악이 흐르고 내 가슴은 잠시 다시 평온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그의 전화가 울렸다.
그는 급히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그 짧은 순간,
나는 왜인지 그의 지갑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지갑 깊숙이 있던 낯선 여자아이 두 명의 웃고 있는 사진.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왜 밖에서 받아?”
“아… 그냥 좀 지저분한 얘기라서 그래.”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없지?”
잠시 멈춘 그의 호흡.
그건.‘거짓말 시작 전에 숨 고르는 소리’였다.
그 짧은 쎄함.
그게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뭔가 있다.
그리고 곧 알게 되겠지.
아마…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