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차 안, 사진 속 아이들은 누굴까
고민할 시간은 필요 없었다.
나는 온몸의 세포들의 촉이 반응하며 직감했다.
이 남자 가정이 있었던 사람이다.
저 사진 속 아이들은 그의 딸 일 것이고 방금 전화는 아이들이거나 전처이거나 아무튼 그 가족 일게 분명했다.
내 앞에서 살짝 옆으로 가 통화하는 적은 있어도
저렇게 당황스러워하면서 급히 차를 세워 나가서 받을 정도의 전화는 지금까지 내 앞에 보인적이 없었다.
나는 일단 모른 척 가고 있었다.
그는 어색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집 말고 이곳저곳 다른 데 가고 싶은데 없냐고 물었다.
나는 동대문 시장에 구경 가고 싶다고 했다.
그때는 동대문 시장이 활기차고 재미있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야 해서 몇 번 못 가봤다.
마침 편하게 갈 수 있는 이 기회에
최대한 내 기분을 맞춰주려 애쓰는 이 시간을
내가 마음고생 한만큼 보상받고 싶었다.
"그래 동대문 시장 좋다. 연이 맨날 집에서 답답했을 텐데 야시장 구경도 하도 옷도 몇 벌 사 오자."
그는 흔쾌히 동대문시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
가는 길에 이 남자의 폭력적인 모습을 또 보고 말았다. 주행 중에 다른 차가, 차선 변경이 서툰 건지 뭔지,
우리 앞으로 끼어드는데 약간 아슬아슬 위험하게 끼어들었다. 그의 입에 입에선 자연스레 거친 욕설이 나왔고 갑자기 엑셀을 강하게 밟아 앞차를 앞질러
주행을 방해하며 성질을 부렸다.
"오빠 위함 하게 왜 그래. 그만하고 가자. 사고 나겠어.
저 사람 운전 미숙이겠지."
"아냐 저 개자식 운전 미숙 아니야. 저런 새끼는 한번 당해봐야 담부터 저딴식으로 운전 안 하지. "
아... 이 사람 처음 내가 알던 이선우가 아니었다.
분명 어른스럽고 매너 있고 내게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웠던 그 사람...... 그림자조차 사라진 듯했다.
상대방차 운전자도 화가 났나 보다.
차를 세우라고 신호를 보낸다.
그는 당장에 앞차뒤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거친 욕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상대방과 마주 하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금세 흐름이 잡혀 갔다.
근데 이 사람 적당히 하고 돌아오면 되는데
어제오늘 쌓인 자신의 실수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 때문일까
도대체 상황이 끝나가지 않았다.
상대는 이미 사과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겁박하는 듯 계속 퍼붓는 그의 위협적인 모습......
동승자가 있었는지 차에서 다른 여자가 내린다.
그녀는 같이 사과를 하기 시작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차 문을 잠그고 이 상황엔
가만히 있어야겠다 싶은 분위기가 파악됐다.
갑자기 여자가 우리 차로 다가온다.
창문 가까이 내 자리를 들여다본다.
나를 확인하고 차 창문을 두리리며 내려달라고
하길래 나는 아주 살짝만 창문을 내렸다.
그녀는 내게 저희가 잘못했으니 사장님 좀 말려 주세요.
부탁드려요...
"저도 저 사람일에 나서지 못해요. 죄송해요."
한마디만 하고 창문을 올려 버렸다.
너무 미안하고 안 됐지만 어쩌냐.
나섰다간 나 역시 그 화가 튈게 분명한데.....
나는 지금 어제오늘 꼬투리로 큰소리 칠 기회가 있는데 나부터 살아야 했다.
한참을 뭐라 하고 상대차 남자와 여자는 고개 숙여
절절히 사과를 하고 겨우 차에 올랐다.
그는 차에 탔다.
"저런 싸가지 없는 것들은 아주 혼쭐을 내줘야 돼.
지가 잘못해 놓고 어디서 성질을 내고 감히 차를 세워라 말아야? 여태 만만한 인간들만 만났나 보지?
개새끼! 아주 이번에 정신 바짝 차렸겠지."
"그래 저런 사람도 한번 혼나봐야지.
잘못 만나면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해야 담부터 그냥 서로 조심하고 하겠지."
속으론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이지만
겉으로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말에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점점 그의게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부림치는 것처럼......
그 뒤로도 그런 일은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그냥 넘어가는 일은 없었고
어느 사람은 내게 " 제발 말려주세요 죄송해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애원하듯 부탁한 적도 있었고 나는 못 들은 체 의자를 뒤로 졎혀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튼 동대문 시장에 도착한 우리는
오랜만에 밤의 화려한 시장에 왔다.
이곳저곳 화려한 밤시장을 구경하며 어느새 기분이 환기되어 풀어졌고 맘에 드는 옷가지 들도 하나씩 챙겼다.
그는 구경만 하고 옷은 다른 데서 사준다 했지만
나는 여기 있는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이 맘에 들었다.
옷 한 벌 살 돈으로 여러 벌을 살 수 있고 무엇보다 독특한 디자인들이 많은 이곳.
답답했던 일상에 숨이 트이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제 집 근처 한강으로 가서 잠시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오늘 본 사진 이야기를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급하고 참지 못하는 성격에 한강에서
커피를 마시며 꺼냈다.
"오빠 아이 있어?"
"어? 무슨 말이야? 아이라니?"
"아니 아까 오빠가 당황하며 밖으로 나가 전화받길래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오빠 내 앞에서 전화 피하며 받은 적 없잖아."
"그래서 문득 오빠 지갑에 내 사진 잘 있나 보려고 들춰 봤지. 그 속에 여자아이 둘 같이 찍은 사진 있던데...
오빠 애기들 아냐? 괜찮아. 나는 오빠랑 나 사이 비밀 같은 거 없으면 좋겠어. 속이지 말고 피하지 말고 당당해지면 오히려 편하고 좋잖아"
그는 담배하나를 입에 물고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꽁초를 버리며 입을 열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사실 나를 만나기 몇 달 전 자기는 교도소에서 징역 2년을 살고 나왔다고 한다. 그전에 일찍 결혼을 해서 큰딸 10살 둘째 딸 8살이라고 했다.
아이 들은 전처가 키우고 있고, 이혼은 교도소로 들어가기 얼마 전에 했다고 한다. 아이들 키우며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과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교도소가 그때가 처음이 아니였다고 했다. 이혼 후 아이들 양육비와 아이들 문제로 가끔 전처와 통화를 하고 있고, 아이들이 가끔 아빠가 보고 싶다고 종종 아까처럼 전화가 온다고...
사실 나와 함께 하기로 한 뒤부터 웬만하면 자기가 출근한 뒤 밤에 전화하라고 했는데 아까도 아빠가 일하는 시간인 줄 알고 전화를 한 거고 가끔 내게 본가 다녀온다고 하거나 출근한다고 할 때 그 시간 아이들을 만나고 온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 끊어졌다.
본인은 여태까지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옥죄고
가둬놓고 통제하면서. 자신은 내게 결혼했던 사실, 아이들까지 있던 사실, 그리고 나 몰래 종종 전처와 아이들을 만났던 것까지 철저히 속였다.
나를 세뇌시키던 그의 모든 모습이 두려워졌고 피하고 싶어졌다.
"그랬구나...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기분 나쁘지 않고 오빨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 아이들도 있는데 마음고생 심했겠다. 이제 다 털어놨으니 숨기지도 말고 맘조리지 말고 아이들 만나. 나도 그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어"
내 속은 이미 배신감과 이 남자에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 갔지만 그때 당장 어떤 선택도 계획도 할 수 없었기에 그냥 그를 달래고 믿어주는 척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를 안으며 말했다.
"미안해 연이야. 너에게 상처가 될까 봐 비밀로 하고 싶었어. 최대한 내가 너 마음 다치지 않게 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네. 고마워 연이야. 이해해 줘서 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널 위해 더 잘할게. 사랑해. 평생 내 곁에 있어줘"
"그래....."
그를 향한 나의 사랑은 점점 식어 갔고 나는 그저
그의 곁에 있는 콩이와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주인과 애완견...
주인의 사랑과 통제 안에 키워지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반려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