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 났고 그에게 정이 떨어졌다.
그동안은 그래 이 남자도 불우한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겠지.
그 마음으로 어느 정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와 밖에서 시비가 붙거나 남을 짓누르는 행위도 뭐
그가 살아온 방식이니까 모른 척 눈감기도 했다.
나에게 집착하고 통제하는 건 나를 사랑해서 사랑하니까. 그러나, 그가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라
불안과 여러 가지 그의 삶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 여기며 사랑 하나만 믿고 그에게 어느 정도 맞춰주고 있었다.
그가 술에 취해 화가나 하는 폭력적인 행동도 가끔 다른 영혼이 씐 것처럼 극도의 불안함을 줬지만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같이 사는 몇 년간 나에게 손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 순간이 지나가면 나도 화를 냈고 그때마다 또 미안하다 애원하는 그가 애초로워 지금까지 이어왔다.
-나에게 너는 자기가 없으면 별 볼 일 없는 년이다.
-어디 가서 사람구실 못한다.
-너는 나아니면 평생 웃음이나 팔고 살년이다.
-네가 멀쩡한 남자 놈 하나 만나서 살 수 있을 거 같냐.
-내가 너를 구제해 준거다.
-항상 나한테 고마워해라
내게 화가 나거나 싸우고 나면
늘 나에게 이런 말을 똑같이 반복적으로 말했다.
처음엔 기분이 나빴지만 듣다 보니 다 맞는 말 같았다.
시간이 지나니 오히려 그런 나와 있어 줘서
이 남자가 정말 나에게 고마운 사람인가 라는 생각까지
들 만큼 그는 나에게 수도 없이 말했다.
그래도 이 남자에게 정이 떨어졌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했었고 이 사람을 따라 여기까지 온 나의 선택이 가장 큰 내 책임이라 여겼기에, 그리고 나보다 이 사람이 더 가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선우 그는 항상 강한 척 당당한 척 밖에서는 그렇게 행동했고 그런 그를 사람들이 따랐다.
그러나 솔직히 나와 함께 있는 시간에서 그는 한없이
어리고 나약하고 그 속에 자라지 않은 내적아이가 내게 기대고 있는 것만 같아 안쓰럽고 연민이 자꾸 쌓여 갔다.
근데 그날 지현언니와 언니의 약혼자 앞에서,
내게 남은 유일한 가장 아꼈던 소중한 인연을 그렇게 사람 같지 않게 행동하고 나를 그들 앞에서 철저히 짓밟은 그 순간, 내가 이 사람 곁에 살면서 느꼈던 모든 감정들이
전부 부대끼며 속에서 구역질이 나는 듯 울렁거렸다.
당장에 쏟아내고 떠나고 싶었다.
웃음을 팔며 살든 바닥에서 기며 살든
이 남자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말을 해도 당분간은 화를 풀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이 고통스러운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만 그 생각만 하며 말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그는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죄인인 마냥
"앞으로 너는 지현이 그년이랑도 만나지 마.
아까 봤지 나 가르쳐 들려는 거. 지 애인 앞이라고 뭐 내가 네네 할 줄 알고 건방지게 그딴 소리를 지껄인 거야?
그나마 니 주위에 멀쩡하게 사는 년이라 만나라고 했더니 아주 싸가지 없는 년이네. 언니라는 년이."
"....."
"왜 대답이 없어? 내 말이 틀렸어? 이 시간까지 연락도 안되고 남자새끼 하나 갖다 놓고 뭐 하는 짓거리야?
지년이 결혼할 거면 지들끼리 놀고 너는 집에 보내야 할거 아냐! "
"그게 왜 언니 잘못이야? 내가 만나자고 했고 언니가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만나줬어. 그리고 둘도 없는 친한 언니가 결혼한다고 결혼할 남자 소개하는 자리가 그게 뭐가 잘못된 거야!!! 나는 왜 맨날 네가 하라는 데로 해야 하고 왜 네가 만나라고 하는 사람만 만나야 하냐고!!
내가 니 인형이야??
너 밥이나 해주고 너한테 엄마줄돈이나 구걸하면서 그까짓 거 주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그 대가로
몸도 마음도 다 니멋데로 쓰고 네 맘대로 가두고
내 감정 따윈 상관도 없이 네가 원하면 나는 무슨 네가 말하는 웃음 팔고 몸 팔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그런 여자처럼 너에게 그딴 대우나 받는 그런 여자야?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한테 진짜 유일하게 의지하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지현언니였는데 그 사람 앞에서 나를 그렇게 모욕을 주고 언니에게 네가 뭔데 욕을 하고 네까짓 게 뭔데 그 사람들을 무시하고 거들먹거려!!! "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분이 쏟아졌다.
말이 끝나자마자 목이 쉬어라 울었다.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을 처음 알았다.
속상한 마음을 느끼고 마음이 아프게 슬프다는 말인지 알았지만, 그날 나는 처음으로 목놓아 울면서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올라왔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그저 표현이 아니라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터져 나오는구나.
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만든 어리석었던 내가 미웠다.
결국 모든 화가 나에게 쏟아졌다.
"병신 같은 년. 미친년. 생각 없는 년. 쓰레기 같은 년. 이제 겨우 25인데 인생. 참 × 같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씨발 나는 시궁창에서만 살다 살다 여기까지 왔네. 이제 진짜 죽어 버리고 싶다. 더는 미래도 없고 이런 × 같은 인생 그만 살고 싶다 진짜."
스스로에게 욕이 쏟아졌다.
그리고 진짜 죽어 버리고 싶었다.
태어나면서 그날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이 비참하고 비참하게만 산거 같아 앞길이 보기도 싫었다.
이선우 손아귀에서 벗어날 용기도 없고
그저 이 새끼랑 이렇게 개같이 살바엔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그는 내 이런 모습을 처음 봤고 당황한 듯
내게 말한마디 하지 못한 채 그냥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아 진짜 끝까지 모든 정이 다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자리를 떠나는 그 남자 비열했다.
나는 한참을 가슴을 두드리며 울다가 내 곁을 유일하게 떠나지 않는 콩이를 안아 들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