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엄마가 일하는 식당 앞 골목에서 종일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기다리기 지루해질 무렵 누군가 뒤에서 다정하게 소녀의 이름을 물으며 인사를 건넸다.
“네가 미영이구나?”
안경을 쓰고 가느다란 눈매를 가진 작고 마른 체격의 아저씨는 그 뒤로 식당에 자주 드나들면서 소녀와 점점 낯이 익어갔다.
자주 오가며 인사를 나누던 그 아저씨가 점점 반가워질 무렵 소녀와 엄마는 어느새 아저씨의 봉고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엄마와 단둘이 살며 아빠의 존재를 몰랐던 7세 소녀에게 처음으로 아빠가 생겼다.
엄마의 재혼 후의 일이다.
서문 국민학교 1학년 김미영은 일 년을 무사히 보내고 봄 방학을 맞이했다. 곧 새 학년이 되는 것이다.
그때의 소녀는 여느 친구들의 흔한 설렘을 느끼지 못했다. 늘 손톱 끝에 피가 고였다.
유독 키가 작았던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는 손톱을 뜯었다.
애꿎은 손톱 끝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났다.
그 피의 맛이 좋았다.
두꺼운 겨울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는 포근함이 싫었다.
그렇게 2학년이 된다는 게 실감이 날수록 피의 맛을 느끼려 안달이 났다.
새 학년이 되면 새로운 담임 선생님을 만난다.
담임 선생님에겐 학기 초에 가정 조사서를 내야 한다.
그 사실이 어린 소녀의 손톱을 가만두지 않았다.
소녀는 말수가 적고 부끄러움이 많았다.
학급 친구들은 봄 내내 소녀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못했다.
아니, 외우지 않았다.
그럴수록 소녀는 고개를 땅과 마주한 채 수평을 이루며 다녔다.
가난한 흙 수저, 재혼 가정의 맏딸.
소녀의 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허름하고 낡은 흙집이었다.
화장실도 밖에 있고 부엌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있었다. 현관 같은 건 없었다.
얇은 판자로 만들어진 문에 창호지가 발라져 있는 문이 현관 이자 방문이었다.
그 단칸방 부엌 하나 달린 집에 네 식구가 살았다.
이미 학급 친구들의 엄마들은 친구들에게 좋은 친구 사귀는 법을 단단히 알려주며 소녀의 이름을 들먹인 후였다.
한 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