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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질라

by 은나무

##15.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 질라



우리 집 재정관리는 남편이 도맡아 하고 있다.


아마도 내가 했다면 우리는 빈털터리가 되어 심하게 말하면 노숙자 생활을 한다 해도 이상할리 없다.


나는 가난하게 자랐다.

경제관념을 배우지 못해서 그랬다 쳐도 계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아니 지금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반면에 남편은 유복하게 자랐다.

생활력 강하신 시어머니 덕분에 아버님 대신 어머님이 일찍이 사업을 하셔서 남편이 어릴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는 걱정 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관념을 서로 다르게 익혔다.


나는 못 가진 서러움에 늘 돈을 버는 이유가 쓰기 위함이었고 그 선을 넘으면 일단 갖고 보자까지 갔다.

신용카드가 있으니 할부로 사고 갚으면 되지 하는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살았다.


남편은 넉넉한 살림에 편안하게 자랐어도 경제관념은 바로 잡혀 있었다. 돈에 대한 계념이 잘 잡힌 사람이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몇 번이고 꼭 필요한 건지 생각하고 나처럼 일단 갖고 보자가 아니라 그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모아서 사는 걸 선호했다.


겁 없는 막무가내 성격답게 돈 앞에서도 생각 없이 무서운 줄 모르던 이은정과 조심성 많고 계획적인 성격답게 돈을 사용할 때도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 사용하는 송찬호는 정말 정 반대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정관리를 남편이 하는 거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가 됐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서로 맞춰가기가 참 힘들었다.


아니 서로가 힘들었다기보다는 남편이 힘들었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똥고집이 있었고 갖고 싶은 건무조건 가져야 했다.


남편은 나를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래도 남편의 외벌이 살림에 네 식구가 살기엔 녹록지 않아 나름 남편을 따라 살았는데

우리에게 어려움이 찾아온 건 내가 10년 전업주부 청산을 하고부터다.


둘째 아이가 10살이 되고 남편의 외벌이로 네 식구 살림살이가 빠듯해졌다. 남편 혼자 감당하기에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진 미용기술로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처음엔 오랜만에 사회에 나가 일을 하니 뭔가 살아있는 기분도 들고 생기가 돌았다.

많지는 않지만 아르바이트로 생긴 돈의 일부로 가정살림에 보템을 하게 되니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거기까지만 했어야 했다.


10년간 잠잠했던 내 소비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돈이 생기니까 하도 싶고 갖고 싶은 게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이틀만 해야지 했던 일을 삼일 사일 늘리다가 결국 주 5일 근무하는 정직원 까지 하게 됐다.


준중형차에서 중형차가 갖고 싶었고, 10년간 스킨하나만 바르던 주근깨 가득했던 얼굴에 피부과 관리가 받고 싶어 졌고, 다낭성증후군 부작용으로 갑자기 불어난 살 때문에 몇백만 원씩 하는 다이어트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런 나를 걱정하며 만류했다.

“은정아 나는 네가 힘들게 5일씩 일하는 건 반대야. 몸도 약한데 너무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살림에 조금만 보태줘도 충분하고 나머지는 너 용돈 하면서 나중을 위해 조금씩 비상금으로 모아두는 게 어떨까? “


“젊을 때 벌어서 써야지~ 나 그동안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나도 못하고 살아서 지금 얼마나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걱정 마 열심히 일해서 다 할 거야!”


역시 우리는 생각부터 달랐다.

나는 드디어 일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욕심을 부려 차를 중형차로 바꾸기 시작했고, 피부과에 가서 주근깨만 지울 생각으로 갔다가 몇백만 원어치 관리를 할부로 끊고 왔다. 살을 빼보겠다고 연예인들도 한다는 한의원 다이어트에 가서도 카드할부를 한치의 망설임 없이 지르고 왔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얼마나 힘이 빠지고 지치고 늙어 갔을까…. 아끼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 따로 있고 내가 벌어서 쓴다는데 왜 그래 다른 남편처럼 해주진 못할망정 이라며 철없는 소리 해대며 나는 저지르고 다녔다.


남편이 그런 나를 보며

“뱁새가 황새 따라다니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제발 정신 차려라.!!! “

매일 같이 이야기했다.


도통 이해가 안 갔다.

벌면 되지. 왜 저렇게 사람이 쫄보야 통이 작아도 너무 작아라고 생각하며 나의 막무가내는 결국 남편의 예견대로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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