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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허락한 장보기
지금 나의 장바구니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뒤적거려 보려 합니다.
누런 호박 빛깔 늙은 호박을 녹즙기로 갈아서 끓이면 단호박과는 다른 진한 호박의 꼬리한 향이 배여있는 호박죽이나 호박숲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양이 엄청 증식하기 때문에 보온통에 넣어서 따뜻한 마음이 고플 이에게 전하여 함께 나누기에 좋을 거에요. 채칼로 가늘게 쳐서 감자채와 같이 부쳐 먹으면 비오는 날의 식사나 막걸리의 단짝이 되어 주겠지요.
여름이 지나갈 때 제철을 맞아 맛도 양도 가격도 더 할 나위없는 고구마도 자주빛 얼굴을 환하게 내어 놓습니다. 밤고구마든 호박고구마든 종류를 불문하고 달콤함은 최고이고 커피든 우유든 두유든 궁합도 가리지 않거든요.
강낭콩과 끝물 옥수수를 말린 알맹이, 땅콩도 가을바람이 할퀴고 간 여름들녘을 갈무리하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어요. 강낭콩은 밥 위에 얹어서 입맛 도는 한 끼가 되고 땅콩은 삶아서 책을 읽다가 먹을 테여요. 여름날 옥수수는 원없이 쪄 먹었으니 이번에는 미뤄둔 영화를 보면서 먹을 팝콘을 튀기거나 내일 아침 새로운 밥위에서 쫀득한 식감을 주며 입안에서 톡톡 터질겁니다.
비는 오는데 시절은 수상한데 가을비가 예쁘게도 내리고 있는 저 들판은 어머니처럼 아직도 내어주지 못해 미련이 남나 봅니다.
Brunch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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