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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미 Sep 24. 2024

우리가 만났던 대한극장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뮤지컬, 콘서트, 연극, 발레, 음악회 등 문화예술 공연을 좋아한다. 한때는 셰익스피어에 빠져서 그의 모든 작품을 읽고 공연을 보러 다닌 적도 있다. 대중적인 영화에 비해 공연예술은 관람료가 대중적이지는 않기에(물론 그 공연을 올리기 위해서는 적은 비용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로 혼자 다녔다. 지금의 남편인 '레오'는 그렇게 공연을 보러 다니다가 우연히 만났다. 그도 공연을 무척 좋아했다. 주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전쟁영화를 즐겨보는데 대체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고르게 보면서 자신의 감상평을 이야기하곤 한다.


처음 레오와 대화를 나눈 건 sns에서였다. 한창 sns에 빠져 온라인상의 팔뤄들과 소통을 하던 시기였다. 마침 그때 셰익스피어에 빠져있던 터라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열리는 햄릿 공연을 예매해 둔 터였다. 조금 할인된 가격으로 프리뷰 공연을 예매했다. 본 공연의 가장 첫 공연을 예매한 셈이었다. 그런데 공연 전날 sns팔뤄 중 한 명이 그 공연을 보고 왔다는 것. 내가 예매한 공연이 첫 공연이었는데, 이게 웬 뻥인가 싶어 바로 멘션을 남겼다. 본공연 전에 다른 공연이 있었나 봐요~ 라며. 그랬더니 그의 답변은 자신은 기자 시사회로 초대를 받아 공연을 봤다는 것. 아하... 그런 게 있었구나. 멋쩍게 답변을 남겼는데, 자신은 본공연 초대권도 받으니 혹시 또 공연을 보고 싶으면 얘기하란다. 이게 웬 떡이지 싶어 알겠다고 하고 대화를 마쳤다. 


그리고선 며칠 후, 그에게 연락이 왔다. 시사회 영화표가 여러 장 생겼는데 지인들과 함께 와서 보란다. 함께 일하는 동료 두 명을 데리고 대한극장에 가서 그를 처음 만났다. 짙은 쌍꺼풀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진한 인상의 그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기린 패턴이 있는 스타일리시한 후드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진한 인상보다는 홑꺼풀에 샤프한 스타일을 좋아했던 나는 속으로 내 스타일은 아니다고 생각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눈 뒤 영화관에 입장했다. 영화는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중년의 주부역을 맡은 배종옥이 말기 암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하는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매우 슬펐다. 보통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지만 이날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준비 없이 흐르는 눈물 때문에 손수건도 휴지도 없어 당황하고 있는데, 옆에서 그가 휴지를 건네며 손바람으로 열을 식혀줬다.



그렇게 나름 멋쩍었던 첫 만남을 뒤로하고 햄릿 공연을 보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이 날의 만남이 단 둘이 만난 첫날이었다. 공연이라는 공통관심사를 가지고 만났기에 서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이야깃거리는 충분했다. 햄릿 공연 이후로도 그는 공연표가 생기면 나에게 이야기했고 나는 그를 공연메이트로 생각했다. 함께 공연을 보고 공연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보는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아무래도 혼자 볼 때는 이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혼자 후기를 쓰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할 수박에 없어 아쉬웠던 터였는데, 공연메이트가 생긴 것은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었다. 다소 이성적인 목적의 나와 달리 그는 처음 봤을 때부터 나에게 반했다고 한다. (왜지?!) 그도 그럴 것이 공연을 보고 나면 언젠가부터 나를 집에 데려다주었고,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연장소로 함께 가는 일이 반복되었다. 강동의 그의 집- 평창동의 회사- 강서의 우리 집은 서울의 끝과 끝인 만큼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매번 데려다주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열정이었다고 웃으며 이야기하곤 한다. 같은 취미로 자주 보다 보니 나도 조금씩 그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레 연애를 시작했고 첫 만남 이후로 1년이 되어갈 때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레오는 우리 둘만의 첫 만남의 추억이 있는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충무로를 지나가다가 2024년 9월 30일부로 대한극장이 영업을 종료한다는 안내를 보게 되었다. 1958년 개관해 66년 만의 영업종료란다. 추억의 장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어릴 때 뛰어놀던 조부모님 댁의 과수원이 지금은 기차역이 되어 추억의 장소가 사라진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우리의 첫 만남 장소인 대한극장마저 영업을 종료한다니.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아쉬움이 몰려왔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하는 요즘이니 66년이면 오랜 기간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생각도 든다. 다행히 극장은 공연장으로 운영될 예정이라니 아쉽지만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공연장이 된 대한극장을 다시 찾을 그날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뒤로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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