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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노미 Sep 27. 2024

그녀의 손길이 내 몸 구석구석을 스칠 때

세신 이야기다. 결혼 후 레오와 함께 떠난 온천 여행에서 처음으로 내 몸을 세신사에게 맡겼다. 어릴 때는 엄마 아빠 이모 그리고 친구가 등을 밀어주었고 하나 둘 나이를 먹으면서 혼자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으나 거의 샤워 수준으로 씻어온 세월들. 그러던 중 세신사를 만나 내 몸을 맡긴 경험은 신세계였다. 목욕의 정석을 배웠다고나 할까...?


내 몸 구석구석에 때수건을 낀 그녀의 손이 지나갈 때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나보다 더 내 몸을 샅샅이 훑어 나가던 그녀의 손길. 세신을 주기적으로 받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동네 단골 목욕탕이 아닌 여행지에서도 세신을 받으면서 세신사들만의 공통 신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세신은 똑바로 누운 상태에서 시작된다. 물을 끼얹고 발에서부터 비누칠을 시작해 다리, 몸통, 팔, 목 순으로 올라오며 사정없이 온몸을 스쳐 지나간다. 양팔은 내리고 있다가 그녀가 한쪽씩 팔을 훑고 지나가면 자연스레 위 또는 머리 양옆에 팔을 두게 된다. 그러다가 그녀가 나의 오른발을 잡고 탁탁 치면 시계방향으로 돌며 옆으로 눕는다. 오른발을 잡고 있기 때문에 오른발을 고정한 상태로 돌 수밖에 없다. 그러고 나서 돌라는 말을 하면 엎드린다. 양팔은 마사지를 받을 때처럼 베드 양 옆에 주욱 늘어뜨린다. 고개는 한쪽 방향을 보며 누울 수밖에 없다. 그러다 이마를 대라고 하면 이마를 대고 엎드려 눕는다. 이때 가벼운 어깨 마사지를 함께 받는다. 이마를 대고 누워 있으면 양팔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양 어깨가 끝났다 싶으면 고개를 한쪽으로 돌려 힘을 풀고 누워도 된다. 그렇게 다시 오른발을 잡고 돌라고 하면 시계방향으로 돌아 반대쪽 옆을 훑어 나간다. 그리고 똑바로 누우면 다시 전신에 비누칠을 하고 얼굴에도 마사지를 한다. 얼굴 마사지는 짧지만 꽤나 강렬하다. 이대로 끝난 것이 아니다. 앉은 상태로 등과 팔다리를 한번 더 훑는다. 다시 누운 뒤 엎드려 전신 타월 마사지를 받는다. 마무리 작업인 것이다. 이렇게 그녀에게 내 몸을 30~40분간 맡기고 나면 모든 과정이 끝이 난다.


세신을 받기 전에는 준비해야 할 과정이 있다. 보통 항상 대기가 있기 때문에 가자마자 현금을 세신사에게 지불하고 열쇠를 걸어두거나 키 번호를 보드에 적는다. 내 순서가 되면 내 키 번호를 불러주기 때문에 키 번호는 기억하고 맡겨야 한다. 그러고 나서는 곧장 몸 불리기 작업에 들어간다. 몸을 불리지 않으면 때가 잘 밀리지 않아 그녀가 속상해하기 때문에 가볍게 비누칠 샤워 후 온탕에 들어가 열심히 몸을 불려야 한다. 이렇게 20분가량 충분히 몸을 불리고 나면 준비 완료! 


사진: Unsplash의Roberto Nickson


세신을 받으면서 가끔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도 있다. 보통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배에 줄무늬가 있네요?"

"아, 수영복을 입고 태닝을 잘못해서 배만 줄이 가게 탔어요. 하하."

"아~ 아래위로 나눠진 수영복을 입어서 그렇구나?"

"네, 맞아요. 그걸 까맣게 있고 너무 오래 햇볕에 누워있다가 배에 이렇게 줄무늬가 생겼지 뭐예요."

내 속살을 볼 일 없는 지인들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세신사와 나누고 있으니 뭔가 대나무숲에 이야기하듯 홀가분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든다. 

"팔을 어데 긁혔나 봐요?"

"네? 혹시 멍이 있나요?"

왼쪽 팔을 밀던 그녀가 묻는다. 물소리로 잘 안 들렸던 터라 되물으니 팔에 긁힌 자국이 있더란다. 그제야 엊그제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넣고 뚜껑을 닫다가 뚜껑에 살이 쓸렸던 것이 기억났다. 

"아~ 요리하다가 긁힌 것 같아요."

"글쿠마이~"

그리고 한참을 말이 없다가 다시 그녀가 말한다. 

"게살 인가 봐?"

"네?!"

"아~ 살이 안 찌는 체질인가 봐"

"아~ 그걸 게살이라고 해요? 하하. 네, 좀 그런 편인 것 같아요"

제대로 들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표현은 처음 들어봤기에 신기했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을 게살이라고 한다고? 어떤 연관성일까 궁금했지만 그녀의 손길이 거침없이 들어오고 있었기에 더 물을 수는 없었다. 


세신 받은 경험에 대해 우연히 지인과 얘기하다가 대전에 목욕관리사 즉, 세신 양성 학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려 이름이 국제세신교육원! 검색을 거듭하다가 때 기다리는 청년들이라는 기사도 발견했다. 기사에서 본 때밀이 과정은 꽤나 체계적이었다. 이런 학원이 전국에 10여 곳이 있었다. 최소 3주간의 속성반 교육을 마쳐야 세신사로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해외 이민을 목적으로 배우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의 몸을 깨끗하고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직업이라니. 멋진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의 몸을 구석구석 훑어 주었던 그녀들이 생각났다. '때'를 기다리는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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