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 100일 성공

100. 내게 금연을 선물했다. 역대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by TORQUE

9월 20일. 금연을 시작했다. 그 일기를 꺼내본다.

나는 100일 전 전자담배가 고장이 나서 금연을 시작했다. '그냥 이참에 끊을까?'라고 가볍게 생각했고 그렇게 금연이 시작됐다. 그런데 금연은 첫날부터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다. 약간의 어지럼증 같은 게 있다 없다 한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일기를 쓰기로 했다. 무언가 기록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기록을 위해서라도 금연하게 되고, 그동안의 기록이 아까워서라도 담배를 더 멀리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라고 적었다. 아마도 이게 나의 금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한방이 아닐까 싶다.


금연 이틀째는 운동을 한다. '처음으로 러닝 5km'를 달렸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호흡이 쉬워진 것 같다'라고 한다. 과거의 나는 금연 하루 만에 호흡이 조금 더 쉬워졌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5km를 달렸다. 하루 만에 금연의 효과를 톡톡히 본 거다. 하지만 금단증상 때문에 힘들어했다. 무기력한 느낌이 있고 담배를 끊은 게 아니라 이별한 것처럼 사무친다고 적었다. 그리고 담배 대신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지금 보니 꽤 처절하다.


금연 4일째는 '내가 왜 금연을 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그리고 간단한 결론을 낸다. '흡연을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금연을 해야 할 이유는 수천 가지가 있지만, 흡연을 해야 할 이유는 chatGPT도 답변을 못했다. 이때의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위해 처절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담배 생각이 아니 뭐든 아무거나 행동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내가 먹으려고 과자를 샀다. '짱구'를 샀다. 바삭 달달 맛있다. 스티커도 있다. 휴대폰에 붙였다. 짱구는 아직도 휴대폰에 붙어있다.


금연 6일째, 반평생 따라다니던 불면증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금연 5일 차에 숙면에 들었고 6일째 되는 날에 좋은 몸 컨디션을 느꼈다. 덕분에 금연 의욕이 한껏 고무됐다. 금연 100일째에 접어든 지금, 결론적으로 말하면 금연은 불면증의 직접적인 요인이었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불면증으로 고통받지 않는다. 입면 시간이 빨라졌고, 수면 중 심박수가 굉장히 낮아지면서 깊이 잠들고, 아침에 벌떡 일어난다. 잠을 잘 자니 낮에도 활동적으로 움직인다.

금연 10일째는 회식을 한다. 당시 나는 꽤 위기상황으로 여긴 것 같다. 술은 자제력을 잃게 하고 결과적으로 흡연을 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회식자리에서 술도 마시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금연은 인내의 연속이고 그 인내를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금연의 관건이다.' 금연 10일 차는 누군가에게 싸움을 걸고 싶을 만큼 짜증이 많이 난다고 한다.


금연 12일째는 강남구보건소 금연클리닉에 찾아가 검사 및 상담을 받았다. 금연에 도움 되는 여러 물품을 받아 들고 오니 누군가에게 금연을 응원받는 것 같다고 적었다. 그리고 상담을 받으면 '금연 치료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흡연이 질병이라는 뜻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흡연으로 사망하고 고통받았을지 생각하면 흡연은 확실히 무서운 질병이다. 어쩌면 담배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질병일지도 모른다. 나의 치료도 잘 됐으면 한다.


금연 16일째. 처음으로 쉬지 않고 7킬로미터를 달렸다. 43분을 쉬지 않고 달려 7킬로미터를 달성했다. 금연한 지 이제 겨우 16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큰 변화를 느끼는 걸 신기해한다. 고무적인 건 최대산소 섭취량이 지속적으로 높아진다는 거였다. 심폐지구력이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한껏 고무됐다. 하지만 여전히 금단을 느낀다. 불안증과 강박증을 느끼고 있다고 적었다.


금연 19일. 세상 모든 음식이 맛있어진다. 어찌 이리 맛이 생생하고 또렷하단 말인가. 뭘 먹어도 맛있고 먹는 게 재미있다. 늘 먹던 햇반도 반찬 없이 먹을 수 있다. 달고 맛있다. 담배로 인해 손상된 혀의 미각이 되살아나면서 모든 음식에서 새로운 맛이 난다. 그래서 체중이 2~3킬로그램 정도 늘었다. 당시의 나는 금연을 위해 흡연자들과 술약속을 피하고, 식사 후 바로 양치질과 가글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처절하다.


금연 26일. 머릿속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 그러면서 업무능력도 빨라져 시간이 남는다. 흡연할 때는 무언가 머릿속이 뿌옇게 된 느낌이었고, 업텐션이었다. 실제로 니코틴은 도파민을 자극해 텐션을 올리고 각성 상태를 유발한다. 이런 상태를 수십 년 동안 지속했다. 다행히 조금씩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


금연 30일.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숨이 편해지며, 음식이 맛있어지고, 눈과 머리가 맑아지고, 손 저림 현상이 없어지고, 피로감이 줄어들며,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한 달간의 변화를 적었다. 지금 생각하면 한 달까지가 가장 힘들었는데, 한 달을 채우고 나니 '담배를 끊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 비슷한 것이 생긴 것 같다.


금연 45일째인 10월 30일. 금연 후 체력이 좋아진 것을 느껴 '내가 얼마나 건강해졌을까?' 싶어 한라산에 올랐다. 7시간 만에 무사히 다녀왔다. 아마도 담배를 피웠다면 오르지 못했거나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한라산을 다녀온 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다. 금연 덕분에 한라산 여행도 하고, 체력도 확인하며 금연 의지를 북돋는 시간이었다.


금연 47일째. 금주를 시작했다. 금연과 병행하는 게 어려울 거 같기는 하지만, 금연으로 더 이상 몸이 드라마틱하게 변화하진 않으니, 금주에 따른 몸의 변화를 알아차리기 쉬울 거 같다. 그리고 궁금하기도 하다. 금연이 쉬울까? 금주가 쉬울까? 결과적으로 말하면 금연은 시간이 지날수록 쉬워지지만, 금주는 시간이 지나면 더 마시고 싶다. 그리고 담배는 신체건강을 해치지만, 술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건강도 해친다. 즉 둘 다 끊는 게 좋다.


금연 53일. 담배를 끊고 나서 가장 큰 몸의 변화는 활력과 활동이다. 이전보다 더 많이 움직이게 됐고 움직이는 게 즐겁다. 제주도 한라산에 다녀왔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서울둘레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서울둘레길은 지금도 계속 다니고 있다. 21개 코스가 있는데, 지금까지 10개 코스를 다녀왔다.


금연 67일째인 11월 21일은 상당히 고무적인 날이다. 쉬지 않고 걷지 않고 10km를 달렸다. 금연 후 조금씩 숨이 편해지면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2km. 3km... 그렇게 7km, 8km까지 왔다. 그리고 드디어 생애 처음으로 10km를 달렸다. 10km는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줬다. 담배를 끊고 더욱 건강해졌다는 증거이고, 지금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신호였다.


금연 74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설산에 올랐다. 그동안 산을 계속 다니면서 등산의 매력에 푹 빠졌고, 등산장비도 사모았다. 그리고 117년 만에 폭설이 내렸고 설산으로 유명한 선자령에 올랐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인지 5시간 정도 걸린다는 산길을 3시간 47분 만에 다녀왔다. 어쩌면 걷는 게 너무 지겨워 빨리 걸었거나, 멈추면 너무 추워서 계속 걸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금연 78일. 금주 한 달을 끝내고 등산 후 뼈다귀해장국과 함께 소주를 마셨다. 그런데 의외였다. 소주는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너무 졸렸다. 취한 것일 게다. 소파에 누워 한두 시간 정도 선잠을 자다가 침대로 가 기절했다.


금연 80일째인 12월 4일. 전날 밤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나락 뒤집혔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만들고 이 스트레스가 한동안 생각도 안 나던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들었다. 헬기가 국회의사당에 착륙하는 모습이 나오고, 동시에 창밖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게 느껴지고 손끝이 저려오는 거 같기도 했다. 그리고 담배가 너무나 피우고 싶었다.

나라가 망했는데,
담배 하나 정도는 괜찮잖아!

대통령 때문에 다시 흡연하게 될 줄은 몰랐다. 너무 화가 났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편의점에 담배 사러 갔다. 담배 대신 맥주 캔 4개를 들고 집으로 온다. 대통령 때문에 담배 사러 나왔다가 맥주 덕분에 금연을 지속할 수 있었다. 역시 대통령은 술보다 못하다. 다행히 계엄은 금방 끝났고 나의 금연은 끝나지 않았다.


금연 85일. 지인들과의 술자리. 모두가 담배를 피우러 나갈 때 자리에 남아 혼술을 한다. 이제 술을 많이 마셔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금연 90일. 모든 뉴스가 계엄, 탄핵, 체포, 구금, 사살 등의 무서운 단어로 도배됐다. 보통의 일상이라면 듣지도 보지도 못했을 단어들이 나의 일상에 너무 많이 침투한다. 보통의 일상을 앗아가 버린 대통령. 국민의 가슴에 총칼을 들이댄 지도자라니 믿기지 않는다. 탄핵돼서 다행기니는 하다. 대통령이 담배보다 더 해롭다. 내란 우두머리 때문에 담배를 다시 피우고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금연 95일. 누군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흡연자였다는 게 벌써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진다. 담배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담배는 더 이상 나의 몸과 마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금연 100일. 지난 100일을 되돌아보면 처절하면서 처연했다. 한편으로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며 즐겁고 행복하기도 했다. 지난 100일 담배와 멀어지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100일은 담배 없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고 준비하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100일간의 금연 일기를 마무리한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를 써본 적이 없는데, 담배 덕분에(?) 일기를 썼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는 그렇게 쓰기 싫던 게, 늙어서 써보니 재미있었다. 사실 금연 일기를 끝내는 게 뭔가 나의 일상에서 일기를 떠나보내는 것 같아 이상하게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금연 일기는 나의 금연을 지탱하는 최고의 원동력이었다. 누군가 금연을 결심했다면 일기를 써보를 적극적으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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