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이방인>
오랜 기간동안 많은 이들로부터 읽혀진 책, 명작은 역시 두번은 읽어야 하지요? 낯선 외국땅에서 몸부림치며, 발붙히고 사는 이민생활.. 이 역시 이방인의 모습으로 지금의 생활에 스며들고 있지 않나 돌아보게 된다.
카뮈는 프랑스인이지만, 알제리라는 프랑스의 식민지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토종 프랑스인도 아니며,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알제리인도 아닌, 그 중간 언저리쯤의 이방인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부조리'-'허망'이라고도 하며, 그 의미로는 뭔가 일어날 수 없는 것 같지만, 갑작스레 일어나 버리는 것이라 해 두고, 그 한가지 예로 '죽음'을 들 수 있겠다-라는 카뮈의 세상 보는 철학적 관점이 책 전반적으로 담아져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책 속으로 들어가자면, 먼저 이 책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주인공이 저지른 살인, 그리고 결국엔 주인공의 사형으로 글을 맺게 된다. 이렇듯 '죽음'이라는 부조리의 사건을 전개해 가며, 이야기의 중심인 '나'의 느낌, 생각, 정서 등이 무시된 채, 이미 사회에서 정해 놓은 관념의 틀, 판단의 틀, 묵시적 규범 등으로 원래의 '나'가 아닌, 남으로 부터 해석되는 '나'가 만들어진다. 이는 주인공이 저지른 살인을 두고, 검사와 변호사의 주인공에 대한 상이하게 변론하는 모습으로 잘 나타나고 있다. 진정 주인공인 '나'는 무시된 채로...
어머님의 장례를 치르는 주인공의 담담한 모습, 그건 주인공이 느끼는 솔직한 감정이었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장례에서는 슬퍼하고 울고 부르짖어야 한다'라는 묵시적 관념에 따르지 않는 주인공을 그 사회의 이방인으로 만든다. 주인공으로서는 그가 느끼는 그대로의 감정에 충실하게 지냈던 것 뿐이었다. 또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법정에서의 주인공은 '자기'를 두고 재판은 이루어지지만 '자기'는 없는 이방인이 되어 있다. 이미 검사와 변호사는 '주인공'없는 본인들의 사건보는 관점이 이미 정해져 있다. 결국 사형이라는 판결을 받은 후까지도, '우리 모두'는 '구원'이 필요한 사람이고, '신'에게 무릎꿇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신부 또한 주인공을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철저하게 '나'의 생각은 또 외면된 상태가 된다. 나는 아니었는데, 자꾸만 다른 이로 인해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카뮈는 바로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또한 부조리속의 삶의 이야기를 남기고, 그것을 통한 그의 철학적 과제를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역시, 좋은 책은 두번은 읽어야 할 것이다.(니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