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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 며느리로 산다는 것

27화. 그깟 돈!

by 권에스더

내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아버님은 은퇴하시고

시동생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하는 일이 없어 그나마 월급을 받는 우리가 좀 낫다 싶어 명절이면 재료값이 많이 드는 한우 갈비찜이나 사태찜은 내가 맡아서 했다. 하지만 말을 안 해서 그런지 나의 생각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만들기 쉬우니 하나 보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을 하셨을 때도

입원비에 보태라고 우리 따내는 많은 현찰을 드렸다.


그래도 우린 칭찬 한번 없고 아버님이 퇴원하셔서 기운 없어하시는 걸 시동생네가 이십만 원 주고 보약을 지어다 드려 기운을 차렸다며 어머니는 "둘째네 아니었으면 어쩔뻔했어! 저 집 때문에 살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는 몇 배의 돈을 드렸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지냈다.

그러다 아버님이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계시게 되자 같이 사는 막내 시동생이 수발을 들었다.


아버님을 뵈러 우리가 가자 어머님은 우리를 보고

"막내가 없었으면 어쩔뻔했냐며 그 수고는 하나님이 다 갚으실 것이다. 너희는 그깟 돈 몇 푼 준 게 다잖아!"라 하셨다. 그깟 돈이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닌데 우리의 땀인데 그리 말씀하시니 몹시 서운했다.


우리에게 못 마땅한 게 있으니 그러시나 보다 생각은 했지만 우리도 나름 못쓰고 드린 것인데 그깟 돈이라 말씀하시니 나보다 아들인 남편이 고까워했다.


우리는 칭찬 까지는바라지도 않지만 야단이나 안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다가 어차피 뭘 해도 욕먹는 거 신경 쓰지 말자란 생각으로 바뀌었다.


왜 자식을 밤낮비교하고 우리만 매번 못한다고 하시는지 비교도 싫은데 이젠 야단도 굳은살이 배겼다.


난 솔직히 결혼 전에 부모님이나 학교생활이나 주변에서 야단을 맞은 적이 없어 처음엔 시집살이가 잘 적응이 안 되고 어머님의 이런 행동이 심한 상처가 되었는데 이런 일이 계속되니 이젠 잘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없어진다.

의무로 해야 하나...

생각이 복잡하다.


마음을 다 잡아지만 결심을 해야 할 수 있는 행동이면 부모자식 간에 있을 행동은 아니란 생각만 들뿐이다.

그간의 어머님과의 많은 일들이 나의 마음을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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