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캐나다에 간 우리 가족
우리는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했을 때 캐나다 밴쿠버로 갔다.
남편의 연구 겸 아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많은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네 다른 친구들은 영어유치원을 보내는데 우린 그럴 형편이 안되었다. 그리고 겸사겸사 나도 실험실에 나가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형편은 방과 후 아들을 픽업해야 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냥 시간 날 때마다 혼자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나라에는 안 들어온 원서를 몇 권 구했다.
많은 대학 중 밴쿠버 대학을 택한 이유는 아무리 추워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남편이 갑상선이 약해 추위를 싫어하는 나를 배려해 고른 학교였다.
그래서 따뜻한 줄 알고 두툼한 카디건만을 걸치고 떠났다.
우리는 12월 23일에 도착했는데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자 스튜어디스들이 환호를 질렀다,
"와~ 저 눈 좀 봐! 몇 년 만이냐? 삼 년 만인가?"
눈은 30cm 정도 싸여있었다.
공황 입국대를 통과하는데 새벽 5시라 직원이 출근 전이라 오래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자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은 했는데 우리나라 젊은 남자들은 모두 통과를 시키지 않았다. 한국인은 보류대상이었다. 모두 어떤 유리방에서 기다리게 했다.
IMF 때문이었다. 자기 나라에 부담 주는 존재로 보는 것이었다. 직업도 없이 들어와서 자기 나라에 불법체류를 할까 봐 그런다는 것이었다. 여행 온 것이라고 하면 "그럼 비행기표가 왜 편도냐?"
그리곤 대기실로 가라 했다. 그들은 정처 없이 기다리다 한국행 비행기를 다시 탔다.
맘이 아팠다.
그러는 바람에 한국인 입국심사가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른다. 한 다섯 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약한 나라의 설음을 보는 것 같아 무척 안타까웠다.
겨우 입국해서 공항밖으로 나왔는데 공항문을 나서자마자 칼바람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춥지 않다고 해서 왔는데 이게 뭐지......
눈이 하얗게 싸인 경치는 아름다웠지만 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난 너무 싫었다.
밴쿠버의 첫날은 떨며 시작했다.
벤을 타고 눈길을 헤치고 머물 집에 도착했다. 집은 학생기숙사로 초대교수가 얻어주었고 우리 아이를 위한 크리스마스트리도 해놓았다. 트리 밑에는 아들을 위한 선물도 있었다.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이 있었다.
큰 배려였다. 사람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집은 한국에서 사진으로 보던 집보단 실망스러웠다. 나무집으로 걸을 때마다 바닥 마루가 삐걱거려 전기오븐 위에 있는 냄비가 또르륵 떨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놓고 실망을 하기엔 아직 정신이 없었다.
당장 먹을 것도 없고 주방용품도 없고 가계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 길도 몰라 지도를 보며 눈길을 헤치고 음식점을 찾으러 돌아다녀야 했다.
어두컴컴한 음식점에 들어가 국수 같은 것을 먹었다. 먹었다기보단 한 끼 때웠다.
맛도 없는 음식으로 겨우 끼니를 해결하고 쌀과 라면, 간식걸이와 주방세제나 수세미, 휴지 등을 사서 눈길을 정처 없이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크리스마스라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았고 택시가 지나가 한국에서하듯 본능적으로 손을 들었지만 못 본 체 지나갔다.
여기선 콜로만 불러야 하는데 몰랐었다.
한참을 눈길에서 헤매니 정신도 없고 지칠 대로 지쳤다.
새벽에 공항에 내린 터라 한국으로 치면 하루 밤을 새운 셈이었다. 너무 피곤해서 첫날은 그냥 잠들었다.
눈은 일주일쯤 녹지 않고 그대로 싸여있었다. 밖의 풍경은 매일매일이 흰 눈으로 덮여있었다.
밖에서 노는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신이 나있었지만 우리는 기동력이 없어 일단 차를 구입하러 갔다.
중고차 시장에서 흰 차를 하나 구입하고 나니 좀 살만했다.
이젠 원하는 곳을 갈 수도 있었고 필요한 가구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간 곳이 독일에서부터 알던 IKEA였다. 비교적 저렴한 가구로 알고 있었다.
며칠 지나 구입한 가구가 왔는데 모두 본인이 조립해야 하는 것이었다.
침대를 조립하고 책장과 책상을 조립했다.
그렇게 98년도 연말은 지나갔다.
일월이 되자 비가 오기 시작을 했다.
매일 비가 왔다. 정말 열흘 중 구일은 비가 왔다.
하루는 내릴 듯 말듯한 날씨였다.
거의 한 달 내내 비가 오고 흐려서 해가 떴는지 모를 정도였다.
영하는 아니지만 비 때문에 손이 시리고 뼈도 시렸다. 차라리 맑은 날씨의 영하가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거기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비를 개의치 않았다.
아니 매일 비가 오니 신경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보통 여행객이 오는 오월의 밴쿠버는 많은 꽃이 피고 날씨도 좋아 참 아름답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뒤에 숨어있는 겨울의 우울함, 흐린 날씨에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있다는 것을 모르니까 여기서 살고 싶다고들 한다.
날씨가 안 좋아도 아들과 남편은 학교입학 때문에 학교 관련 관청을 갔다. 아들은 수학 평가로 2학년 2학기로 배정을 받았다.
영어를 몰라도 수학은 풀 수 있었다. 단순한 계산 문제였으니까.
그 후부터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은 학교를 다니기 시작을 하였다. 난 우울하게 있었는데 아들은 씩씩하게 학교를 다녔다. 아들은 늘 씩씩했다.
아들을 데리러 학교에 가 보니 담임 선생님은 서서 말씀을 하시는데 바닥에 앉아있던 아이들 중에 선생님 쪽으로 자꾸 다가가는 아들이 보였다. 사실 말이 안 들리니 멀어서인가 보다로 생각한 것 같았다.
사실 아들은 a, b, c, d 밖에 모르는 상태였다.
그러니 당연히 안 들렸을 것이다.
마음이 짠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까.....
말을 못 말아 듣고 말을 못 하는 가슴 답답함을 겪어야 하고 그러면서 본인의 무너지는 자존감을 맛볼 아들이 너무 맘이 아팠다.
아들이 이겨내야 할 일들이 떠올라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들을 위해 온 것인데....
힘내라, 아들!
엄마가 옆에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