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 (敍事)

허상 위의 진실

by 김가희

그런 적이 없다. 나는 그런 말과 행동을 한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했던가?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내가 과거의 기억을 왜곡했던가. 도통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나의 기억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줄곧 미래를 그리고 현재를 완성하기에 과거는 오롯이 성찰을 위한 자원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지나간 서사는 나를 혼란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녀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 전부 네 짓거리잖아. 저열한 놈.




죽고 싶다고? 그럼 어디 한번 해 봐.


이미 굵은 응어리들이 나의 양볼을 적시고 있었다. 이 눈물만큼은 순간의 진실이었다. 우리는 서류와 기록으로 사실을 재단하는 체계 속에 살고 있다. 법적 공방에서 피고는 늘 한 명이다. 세상이 과연 그리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는가. 사회가 객관적이라 칭하는 모든 증거는 언제나 사건의 파편일 뿐이다. 진실은 내면 깊숙이 표류한다. 그렇기에 감정은 그 시절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다.


순간을 가리기 위해 얄팍한 합리화가 입술을 스쳤다면 정신 그 깊은 곳 어딘가에 컴컴한 기운이 퍼지게 된다. 그리고 이 혼잡함은 시간이 흘러 성숙함과의 대면 이후 섬뜩한 공포가 되어 배출된다. 인간의 교정은 판결이 아닌, 스스로의 자각으로만 가능하다. 옳고 그름은 질서를 유지할 뿐, 정직도 회복도 보장하지 못한다.




만약 감정만이 사실이라면, 나의 서사도, 그녀의 서사도 각각 사실이다. 그 말은 결국 둘 모두 거짓이라는 뜻이다. 입장만이 있을 뿐 진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모든 서사가 허구라면, 끝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와서 그녀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무지를 내게 돌려준다면, 내 안에 잔뜩 쌓인 상처의 무게는 누구의 몫인가. 질문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나를 겨눈다. 그녀가 입은 상처의 주체가 정말 나라면, 책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혹여 열 할 전부가 나의 몫이라 해도, 나의 언어와 행동만으로 그녀를 온전히 치유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날, 나는 침묵을 택했다.

그리고 악질이 되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그토록 선량했던 나의 모습은, 어느 날 갑자기 초인적인 악이 되어 증오에 찬 저주에 시달렸다. 나는 그들이 만들어내는 저급한 단어들과 정밀하게 포개졌다. 나조차 군중의 유희에 동조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분노는 뒤늦게 밀려왔다. 왜 그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를 해명하지 못했을까. 패배라는 끔찍한 메슥거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작정 부르짖었다. 그런 적 없다고. 나는 미쳐갔다. 웅성거림은 더 크고 경쾌하게 귀에 울려댔고,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고함을 지르다 목청에 구멍이 나버려 반강제적인 침묵 수행마저 건네받았다.


인간은 오해 앞에서 두 갈래로 반응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단절. 이 방법은 자신이 소거되기에 무력감을 유발한다. 다른 하나는 지속적인 진실에 대한 해명. 이 방법은 다시 왜곡을 불러오며 자기 자신을 소모시킨다. 결론은 하나로 이어진다. 결국 경로와 무관하게 자기표현 기능에는 상처가 남게 되고, 무엇을 선택해도 손해로 돌아오는 이중구속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너무나 얇아져, 불어오는 바람에 스칠 때마다 살갗이 무방비로 나가떨어질 지경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단 한 발자국만이라도 의심 없이 다가왔다면 나는 그의 품 속에서 어떠한 말도 하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을 것이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나의 육체는 그곳을 떠났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그토록 갈망했다만, 정신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그 누구도 나를 붙잡지 않았지만, 나는 달아나지 않았다.


메마른 사막에 홀로 앉아 시꺼먼 구덩이를 바라보면 어지럼증이 올라온다. 암흑 속을 꽤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 나를 구원으로 이르게 할 날빛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포기를 뒤로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생애 첫 광명을 보았다. 고통이 무뎌질 때쯤 태양은 구덩이를 비추었고, 어둠이 거두어지자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감미로운 깨어남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나의 대응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이 규정한 타인이 틀림없이 분명함으로 보여야 한다는 사실 만이 그들의 신념이었다. 집단이 동일한 믿음을 공유한다면 그것은 법이 된다. 유언비어가 어리석은 짓임을 모르지는 않겠다만, 그것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매한 일은 늘 매혹적이다.


세상은 친절하게 다양한 단어 속에 나를 집어넣어 주었다. 어떤 단어는 나의 어깨를 드높이기도 했으며, 또 다른 단어는 옴짝달싹 할길 없는 감옥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 요란한 수식어가 과연 얼마만큼의 나를 대변할 수 있겠는가. 나를 고취시킨 긍정의 표현은 내가 드러내고 싶거나 비추어지길 바랐던 단면일 뿐, 인정의 말조차 나의 확장을 가로막고 있었다. 결국 모든 평가는 부풀어 오른 글자들의 조합에 불과했던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는 것을 게을리했다. 온 힘을 다해 증명을 애써왔지만, 유감스럽게도 거짓된 이야기는 현저하게 늘어났다. 거대한 장막을 걷어내면, 덩그러니 뛰어대는 심장만이 남는다. 그것이야말로 결백한 진실이었다. 붉은 날것의 생생한 박동. 그것만이 내가 살아낸 유일한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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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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