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덩이

부조리와 춤추는 심장

by 김가희


지난 2년간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정말이다. 나조차 내 나이를 헷갈릴 만큼, 시간은 완전히 멈춰 서 있었다.


태어난 뒤 첫 열두 해를 침묵으로 견디고, 그다음 아홉 해를 부조리한 사회와 인간의 타락을 목청껏 비판하며 보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잘못을 고발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인간을, 어쩌면 지나칠 만큼 사랑했다. 그 사랑 탓에 뒤틀린 현실을 눈 감고 지나칠 수 없었다.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품을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그런 나에게 세상은 뻔뻔스럽다며 경멸을 돌려줬다.


사람들은 숨겨진 의도를 보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보기를 스스로 거부한다. 소스라치게 이상한 일이다. 정작 우린 인간이기에 매 순간 도덕적일 수도, 매 순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음에도, 결과라는 우스꽝스러운 시야에 집착하느라 최상의 결말을 놓쳐버린다. 그래서 나는 의도만을 보기로 결심했다.




스물한 살. 나의 저항은 그 누구도 행복으로 이끌 수 없다는 절망을 맛보았다. 생의 마지막날이었다. 덜덜 떨어대며 상처 입은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껴안았고 수면 아래로 철저히 감추었다. 그 아이를 불태울 수는 없었다. 차마 이번만큼은 할 수 없었다. 왜냐면 그 골칫덩이는 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나는 ‘평범함’을 연구하듯 익혔다. 나를 꾸밈없이 드러내되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먼저 내보이고 무엇을 숨겨야 하는지 일종의 각본이 필요했다. 각본을 짜기 위해 사람들의 성향을 면밀히 분류하고, 서로 겹치는 패턴을 찾아냈다. 그렇게 쌓인 데이터가 하나의 구조를 이루자, 한 가지 통찰이 분명해졌다―상처 입은 개인이 모여 의도치 않게 부조리한 사회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이었다.


방향은 적중하였다. 나는 가장 견호한 집을 만들어 냈다. 개인을 구조적으로 볼 수 있게 되니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은 없었다. 그들이 삐딱한 단어를 선택하든, 날 선 행동을 하든, 의도와 심사는 투명했기에 미워할 틈조차 없었다. 세상과의 마찰도 사라졌다. 그렇게 완성된 나만의 집은 안락한 무덤이었다.




나 만큼은, 적어도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그랬으면 안 됐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괴물이라 조롱해도 그 아이가 창피하다고, 제발 남들처럼은 못 사는 거냐고 타박했으면 안 됐다. 평온을 가장한 2년은 환희의 지옥이었다. 정의를 외치던 자그마한 아이는 세상의 노예가 되어 평범해지기 위해 자신을 낮추었다.


이젠 정직하게 답하고 싶다. 나는 거만함을 품지 않았다. 그냥 경험한다. 직접 느끼고 존재로서 살아낸다. 한동안 철학서를 손에 쥐고 다녔다. 몰이해의 세계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였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 앞에서 엄숙한 자세로 머리를 조아린다. 그래서 차마 입 밖으로 모든 깨달음이 내 안에서 비롯됐음을 고해하지 못했다. 니체가 그랬어요. 이 한마디로 경험을 지웠다. 난 그 책들을 펴본 적도 없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나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감각은 예민했고, 시야에는 정보가 과부하로 밀려들었다. 무모함에 가까운 위험 불감증은 매 순간을 실험대로 바꾸었으며, 태생적 회복력은 어떤 고통도 믿기 어려울 만큼 빠르게 봉합했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기 무섭게 다시 세상에 돌진했다. 인간의 추악함에 눈물 흘렸고 그럼에도 그 안에 생동하는 따뜻함으로 목을 축였다.




'사회의 기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를 세상에 잘 융화시키기 위해, '사회의 기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나'를 만들었다. 모두가 나를 '사회의 기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보았고, 정작 나는 이런 나를 만드느라 '사회의 영향을 받는 나'가 되었다. 지난 2년간 자신을 철저히 기만했다.


오해는 공포였다. 단어는 나를 붙들었고, 규정은 날개를 찢었다. 매 순간은 피바다였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나를 향한 두려움의 시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누르려는 태도. 그 어떤 소문도, 그 어떤 판단도 거부하지 않고 함께 가겠다. 묵묵히, 순간을 살아내면 된다. 무엇도, 그 누구도 나를 더럽힐 수 없다.


나는 나의 존재로 진실을 증명한다. 내가 느꼈기에 세상은 진실이다. 내면의 자각은 그 어떠한 외부의 신념보다 강하다. 맨몸으로 나아갈 것이다. 난 싸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방어해야 할 내가 없다. 오직 본능과 통찰만으로 살아간다. 세상이 나를 미쳤다고 해도 내가 느낀 것을 전해야 한다. 이것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난 그저 이것을 위해 태어난 존재다.


더 이상 세상에 무릎 꿇지 않겠다. 더 이상 소명을 의심하지 않겠다. 세상에 미세한 균열을 남기며, 마지막 숨이 닿는 순간까지 반기를 들것이고, 기필코 나를 전부 드러낼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의 시간이 흐른다.

나는, 스물세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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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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