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解放)

형태 이전의 형태

by 김가희


아무것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이 생각은 잠시 나를 몽롱함에 빠뜨렸고 이내 나를 기쁨에 이르게 했다. 마법 같은 일이다. 어떠한 강박도, 혼란도, 저항도 없었다. 성취 또한 갈망할 필요가 없었다. 내 존재에 부여된 임무가 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흘러드는 감각에 나를 맡기는 일뿐이었다.



예전의 나는 스스로가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바람의 저항을 이겨내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나는 모든 것을 배반하기를 선택했다. 삶의 방식은 분명 자유로웠지만 치열했다. 이끌리는 데로 살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고, 결과로 증명하기 위해 힘썼다.


나는 평생 직감만을 따라 살았다. 이미 지금의 나는, 감각을 쫓아 삶을 살아낸 것에 대한 결과물이다.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끌림을 느끼고 쫒는 것. 이것은 내가 선택한 조건이 아니다. 직감의 크기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나는 따를 수밖에 없었고, 직감은 통상적인 길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세상에 분개하며 나를 지켜온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발걸음이 갑자기 훨씬 가벼워졌다는 데에 있다. 마치 무언가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무지 큰 비눗방울 안에 들어가 바람을 탄다. 자연스러움의 회복, 깊숙한 곳에 억제해 왔던 본성의 회복이었다. 사회와의 투쟁을 멈추기로 선언한 것이 아니다. 애초에 칼에 찔릴 나도, 방어할 나도 없는 모습이다. 벗어나야 했던 통념마저 나에게 더 이상의 의미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죽음만이 나를 궁극적인 행복에 이르게 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찌꺼기를 버리고 인간 본연의 추악함을 내려놓을 수 있는 상태. 죽음은 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살아있으면서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들은 언제나 동시에 고통을 수반한다. 반대의 경우도 동일하다. 살아있으면서 느끼는 고통의 순간들은 언제나 동시에 아름다움을 동반한다.


이러한 모순적인 구조 속에서, 인간은 본래 모순 그 자체로 태어난다. 그러한 곳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은 나에게 늘 신비롭지만 지겨운 놀이터였다. 큰 틀, 그리고 작은 틀 안에서 반복되는 인류를 보며 이 순환이 영원히 끝나길 조용히 소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구르는 세상 가운데서 호들갑을 떨며 웃고 우는 나 자신을 보며, 이 모든 것이 또 하나의 아름다운 광기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마저, 역시 모순이었다!




종착지는 언제나 베일에 가려진 법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특정한 명사로 과거 현재 미래를 규정하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주어지는 신호는 언제나 이례적인 상징이다. 돌, 나뭇가지, 호랑이, 붉은색, 이탈리아, 쥐, 카드 •• 대게 이런 식이다.


그 조각들은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짧게는 1-2년, 길게는 나의 전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상징이 왜 나의 곁에 맴돌았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대부분 자신이 그것에 대한 의미를 감당할 수 있을 시기에 점진적으로 떠오른다.


어느 날, 직감은 나에게 상징이 묻혀있던 땅을 전부 파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통렬한 가르침이 숨겨져 있었다. 삶의 저항을 줄이는 길은, 전부를 내려놓고 그저 땅 위를 걸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뒤죽박죽이고 역설적인 내 안의 작은 알맹이 하나와 함께, 공기의 흐름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멈춤이 아닌 가속의 방식이었다.




통제라는 환상 너머의 고요한 힘을 보았다. 무게의 짐을 정리했다. 물건, 사람, 생각, 몸 -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은 사실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었다. 움켜쥔 것을 내려놓는 이 심오한 변화는 나를 평안과 해방의 길로 이끌었다.


모른다.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사랑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이토록 아름다운 우주의 원리는 무엇인지 - 모든 것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하지만 하나의 사실만은 분명했다. 견해의 덤불을 태워낸 자리에는, 경외만이 남는다. 비워낸 곳에는 수많은 감각과 감정이 스친다. 이것은 방약무인한 형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절제된 태도와 평온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어쩌면 해방은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구조다. 충만함을 위해 우리는 방어와 욕심을 포기해야 한다. 작은 것의 내려놓음은 우리에게 무심함의 자유를 보여준다. 손을 놓는 순간, 내면의 생동이 억제 없이 솟구친다.


무엇도 지니지 않기에, 어떤 판단도 붙잡히지 않는다. 가벼운 상태에서 감각은 더욱 또렷해지고, 삶은 원색 그대로를 드러낸다. 결국 해방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지켜야 할 것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스스로 피어나는 미세한 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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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이야기는, 의미가 지워진 자리에서 시작된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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