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첩 (重疊)

진심의 거짓말

by 김가희


매서운 바람의 끝에, 겨울이 조금씩 물러나던 무렵이었다. 그녀는 새하얀 털옷을 입고, 마치 눈 속에서 막 걸어 나온 사람처럼 선명하게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나의 계절은 바뀌었다.


저항 없이 그녀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하루의 절반을 함께했고, 시간은 그녀를 위해 존재했다. 그녀는 아주 작고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꼈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녀의 환한 웃음을 좋아했다. 그것만으로 나에게는 충분했다.




나는 언제나 나의 가능성에 대해, 아니, 나의 미래에 대해 과할 만큼의 확신을 가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현실을 이유로 꿈의 크기를 줄이지만 나는 그 반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고 낯선 꿈들이 나를 이끌었고, 그 길 끝에 있는 내가 점점 또렷하게 보였다. 사람들은 비현실적이라고 혀를 찼지만, 그것은 나를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이들의 품격 있어 보이는 말일뿐이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믿었고, 내가 열망하는 것을 끝까지 붙잡았다. 그리고 늘, 몇 번의 고통을 넘긴 끝에 그 희미한 불꽃을 현실에 점화시켰다.


그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내 안에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분명히 있었지만, 당시의 현실은 그와 지나치게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가볍게 평가했고, 때때로 그녀 또한 비슷한 시선을 감당해야만 했다. 설명할 수 없는 먼 미래의 내가 결국 그 말들을 잠재울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나에 대한 시선을 견디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서 믿음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끝까지 살아내겠다는 태도였다.




그럼에도 현실 앞에서의 나는, 그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이나 묵직한 죄책감에 부딪혔다. 나는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했고,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마저 진심으로 위로했다. 사랑을 넘어선 우정이었다. 죄책감은 가끔 이유 없는 선의 앞에 등장해 고개를 들지 못하게 만든다. 그녀의 마음은 온전했고, 그 온전함은 나를 흔들었다. 주변의 거센 비난이 반복될수록, 그녀의 다정함은 내게 위안의 탈을 쓴 짐이 되어갔다. 고마움과 죄책감은 종이의 앞뒷면처럼 붙어 있었고, 어느 쪽을 마주해도 결국 동일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인간의 감정은 단일하지 않다. 우리는 하나의 감정을 느낀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둘 이상의 정서가 중첩된 상태에서 반응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충돌이 아니라 존재 구조에 깊숙이 각인된 조건이다. 인간은 어떤 감정도 그 자체로만 경험하지 않는다. 기쁨 속에서 불안을 느끼고, 안도감 뒤에 죄책감이 동반되며, 사랑의 순간에도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감당해야 한다.


이중적 감정은 삶을 느끼는 가장 매혹적인 방식이다. 우리는 감정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순간적으로 해석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해석에 다시 또 다른 감정이 겹쳐지게 된다. 그렇기에 진심은, 말해질수록 오히려 거짓으로 들리는 희비극의 역설을 품고 있다. 한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기도 전에 다음 감정이 밀려드는 그 틈에서, 인간이란 지독한 아픔을 동반한 피조물임을 깨닫게 된다.




여러 상황이 얽히고설킨 끝에, 나는 결국 떠나야만 했다. 그녀를 향한 감정은 단순하게 환원되지 않았다. 애정과 배신감이 동시에 작동했고, 나는 그 둘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떠남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그 배신감이 남은 진심을 왜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마지막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마주하게 될 날엔, 더 이상 그 어떤 비교도 필요 없을 만큼 올라서 있겠다고. 나와 함께했던 시간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증명된 존재가 되어 있을 거라고. 그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몇 해의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감정은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 같은 상황에서 동시에 상반된 감정을 느끼는 일은 인간에게 매우 자연스럽다. 나는 그녀에게서 배신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 배신감 때문에 떠난 것이지만, 어쩌면 그 감정을 지우기 위해 떠난 것이기도 했다. 감정은 언제나 이중적이고, 두 감정은 서로를 부정하지 않는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판단 뒤에는 언제나 그 반대 방향의 해석 가능성이 붙어 있다. 떠나는 것이 비겁한 선택일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선택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한쪽을 진실이라 말하고 싶어 하지만, 생각의 구조는 이중성을 포함한다. 하나의 선택에는 두 개의 논리가 붙고, 하나의 이유에는 두 개의 해석이 공존한다.



상황 역시 양면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나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그만큼 여러 관계를 잃어야 했다. 전진은 곧 단절을 뜻했고, 성장은 고립을 수반했다. 어떤 상황도 한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얻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잃는 것이 있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뒤를 놓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감정, 생각, 상황—그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양면성을 피해 갈 수 없다. 그것은 오류나 혼란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기에 함께해야 할 특성이다. 따라서 양면성은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전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복잡한 양면성을 직시하고, 그 위에서 어느 쪽을 바라보며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인간에게 부여된 유일한 주체성은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소중했던 시기를 뽑으라고 하면 단언컨대 그 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시퍼런 고통의 달음박질을 막아내야 했던 시기. 누구의 곁에도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나의 손을 잡아주던 사람에게는 죄책감과 책임감이 따라야만 했던, 그래서 결국 나를 비약적인 성장으로 끄집어낸 그 찬란한 시기.


더 이상 인생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서만 살 수 있는 날이 나에게 올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너무 멀리 와버렸다. 살기 위해 버텼고, 버티다 보니 이곳에 도착했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가장 인간답지 않은 나를 품은 체, 여전히 인간다움을 사랑하며 살아간다.


흐르는 삶을 막을 수는 없지만, 무엇을 품고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진다. 나는 가장 인간적이었던 시절의 나를, 그리고 그 시절을 사랑해 줬던 그녀를 흐리지 않고 중첩된 평온 속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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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내면에 흐릅니다.

이 글은 '가희: 그럼에도 희망을 이음' 연재 중 하나로,

감각을 지나 정돈되어 가는 생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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