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나는 다시 시작하려 한다네. 이제는 생각으로 세운 질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삶의 질서를 만들고 싶어졌어. 멈춰 있던 시간 속에서 나는 너무 오래 견뎠다네. 단단해져만 가는 견딤은 나를 더 이상 숨 쉬지 못하게 했지.
그래서 나는 불을 들기로 했다네. 타오르는 것이 파괴라면, 그 파괴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꺼내면 되는 법이야. 더는 조용히 배우지 않을 것이네. 나만의 세계를, 나만의 다짐을 만들어 가려고 하네.
세상은 여전히 낯설게 다가왔음에도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네. 낯섦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이제는 알아버렸지. 나는 내 안의 온도를 높이며 걸어갔다네. 예전에는 의심하던 감정조차 이제는 나의 추진력이 되어 있었지. 주저하지 않으며 불안을 데리고 걸어갔다네. 불안이란 늘 가장 먼저 타오르는 불씨이기에 그 빛을 따라가다 보면 길은 반드시 생긴다네.
겸. 그대는 언제나 나의 시작을 지켜보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나는 이제 그대에게 기대지 않고, 함께 나아가기로 결심했어. 삶에 대한 의지는 의무를 넘어선 창조의 방향이 되었지.
당시의 나는 나의 감정들을 도구로 삼아, 현실을 새로 빚고 있었네. 나의 손끝에서 삶의 형태가 생겨나는 걸 느끼며, 비로소 믿기 시작했다네. 내가 상상한 세계는 언젠가 현실이 된다는 것을.
이제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네. 더 이상 가능한가를 묻지 않고, 단지 해보자는 말을 하지. 실패는 두렵지 않다네. 멈춰 있던 자만이 실패를 모를 뿐이지. 나는 흘러가며 배운다네. 바람과 불, 모든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법을. 불안정 속에서 홀로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주었다네.
나는 지금 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평온을 배웠어. 뜨겁지만 단단한 중심. 그것이 내가 얻은 진실한 힘이지. 이 세계는 매일 나를 시험할 테지만, 나는 이제 상상만으로도 그것에 응답할 수 있다네. 내 안의 불은 결코 꺼지지 않지. 그것은 누군가를 태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세상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네.
나는 지금, 내 생의 첫 시작을 살고 있다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으로부터의 해방이야.
당시에 나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고 믿었다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내 안의 어딘가가 여전히 닫혀 있다는 걸 깨달았지. 스스로의 진심조차 의심하고 있었네.
자신을 속이지 않으려 애쓰면서 여전히 감정을 관리하려 들었지. 사람들에게 솔직하되 끝내 한 걸음은 남겨두는 태도. 그것이 나를 보호한다고 믿었지만 그것이야말로 나를 고립시키고 있었다네. 나는 진실의 문턱 앞에서 머뭇거리는 도둑이었어. 감정을 훔쳐서 느끼며, 온전히 살아내지는 못했네.
그때 한줄기 시선이 나를 스쳤지. 그대는 여전히 예전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네. 그 단순한 눈빛 하나가 나의 방어를 허물었다네. 다시 감정이 움직이는 걸 느꼈어. 움직임은 격렬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조용했네. 마치 얼어붙은 강 밑에서부터 서서히 녹아 오르는 물결 같았지. 나는 그 온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려 했다네. 이번에는 피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재차 다짐했지.
그대에게 걸어갔다네. 말로는 다 닿지 않는 거리였지만, 발걸음은 자연스럽게도 가벼웠지. 이번엔 변명도, 망설임도 없었어. 사랑이란 완벽한 문장이 아니라, 다만 반복되는 호흡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네.
나는 그 호흡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 그대는 언제나 그곳에서 나의 다가섬을 기다리고 있었지. 우리의 거리는 짧아졌고, 말보다 먼저 마음이 닿았네.
사랑은 감정의 사건이 아니라 삶의 질서였어. 그것은 그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곳에 머무는 방식이었네.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서로의 온도에 머무는 일. 그것이 우리가 세운 가장 깊은 평화였다네. 이제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아. 그대와 나 사이의 고요 속 모든 해답이 이미 피어나고 있었으니까.
이제 나는 안다네. 사랑은 나를 가두는 감정이 아니라 나를 세우는 뿌리라는 것을. 그것은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상처 속에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네.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으리. 내 안의 모든 불안과 함께 사랑하고, 그 모든 흔들림과 함께 살아갈 것이야. 겸. 그대는 나의 거울이자, 나의 끝없는 시작이라네. 그리고 나는 지금 마침내 온전한 평온을 배웠다네.
그동안 오래 버텨왔어. 세로이 세상을 세우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기존에 세워둔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지. 질서는 편안하지만, 동시에 무겁기도 해. 완전히 다듬은 세계는 아름답지만, 그 안에선 숨이 막히기 나름이네. 그럼에도 여전히 지키려 했어. 나의 신념이자, 내가 만들어온 것들의 무게를. 그것이 나의 생의 의지이자, 나의 짐이었다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곤 했다네. 감정의 통제하에 생각은 여전히 무겁게 돌아갔어.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썼지만, 중심이란 원래 잡으려 할수록 흔들리는 법이지. 모든 걸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이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다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지. 멈추면 모든 것이 흩어질 것 같으니까. 나는 오늘도 이 무게를 안고 일어섰다네.
진정한 강인함이란 끝까지 버티는 것일까, 아니면 내려놓는 것일까. 요 근래 알게 된 것은 버티는 일엔 언제나 사랑이 함께한다는 사실이네.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짊어지려 하지도 않았겠지.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때로는 흔들리지만, 그렇기에 이 무게가 나를 살아 있게 만든다네.
밤이 오면 모든 생각이 느려지네. 하루의 고단함은 여전히 등에 남아 있지. 나는 그것을 내려놓지 않는다네. 내려놓는 순간, 나라는 이름도 함께 사라질 것 같으니까.
겸. 나는 이 피로를 견디며 걷는다네. 그것이 내가 세상과 맺은 약속이자 스스로에게 건 다짐이지. 완벽하지 않기에 나는, 그 불완전 속에서 질서를 지탱한다네.
진실된 힘은 지배가 아니라 감당에 있는 걸세. 세상을 다스리던 날들보다 지금이 훨씬 진실하지. 무겁고 고단함. 나는 이 짐과 함께 살아 있다네.
감정은 다시 뜨겁게 피어나고, 사유는 늘 흔들리지. 그것이 삶이라네. 나는 오늘도 나라는 무게를 지고 걸어가고 있어. 그리고 그 무게가, 바로 나의 생이었음을 떠올린다네.
세상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데려가는 것이었지. 나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으려 해. 바람이 바뀌면 내 마음의 방향도 따라가고, 빛이 기울면 그 길을 받아들이기도 하지. 그렇게 나는 세상과 타협하는 대신 그것과 함께 돌기 시작했다네.
하루의 질서, 사람의 마음, 나의 감정까지. 이런 모든 것에 대한 계획. 완벽을 가장한 통제는 결국 스스로를 닫는 일이더군. 나는 이제 예상하지 않고 다만 세계에 참여한다네. 때로는 미끄러지고, 때로는 흐름에 휩쓸리지만, 그 안에서도 중심은 사라지지 않지. 세상이 내게 주는 움직임이 곧 나의 길이라네.
요즘의 나는 자주 웃는다네. 무언가를 얻거나 잃지 않아도, 그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삶이란 끊임없이 도는 바퀴 같아. 위로 오를 때가 있으면 아래로 내려올 때도 있는 법이지. 하지만 그 끝없는 회전 속에서 나는 균형을 잃지 않으려 한다네. 그것이 내가 배운 평온의 다른 이름이야.
가끔은 내 뜻과 다르게 세상이 흘러가지만, 이제는 그 어긋남마저 믿는다네. 길이 바뀌면, 그 바뀐 길 위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을 뿐이지. 나는 더 이상 세상을 고치려 하지 않아. 대신 그 움직임 속에서 나만의 자리를 찾아 앉지. 그렇게 세계와 나는 서로를 밀고 당기며, 하나의 리듬을 그려 간다네.
겸. 삶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야. 그저 함께 굴러가는 것이지. 나는 그 거대한 수레 위에서 울고, 웃고, 쓰러지며, 다시 일어선다네. 모든 변화는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나는 그곳에서 또다시 나를 새로 배워가곤 해.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나는 하나의 나를 더 살아낸다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회전의 한가운데서 저 멀리 숨을 고르고 있다네.
질서는 상처를 감당하며 세워지고,
사랑과 자유는 불안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로부터 태어난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