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그대에게 마음이 기울던 순간은 거대한 계시와도 같지 않았네. 다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익숙하던 공기가 낯설게 바뀐 정도였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작은 감각이었으나, 나는 그 낯섦을 놓치지 않았네. 오래도록 주머니 속에 간직한 동전을 꺼내 쥐듯, 사소하되 확실한 무게가 손바닥에 남아 있었네. 그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고동치는 회상에 흔들리고 있었지.
그대와 스쳐 지나던 순간들은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네. 순간의 악수, 한 번의 웃음, 바람처럼 스친 걸음이 전부였지. 그러니 나는 그 작은 조각들을 모아 마음속 깊은 곳에 쌓아두었네. 작으나 분명한 외침이 되어 내 안을 흔들었어. 그때 비로소, 그대와 진실로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싹텄네. 설렘은 미세했으나, 그 떨림이 하루를 지배하곤 했네.
관계란 커다란 깨달음의 계시가 아니었어. 그저 오늘의 책임을 하나씩 쥐는 일임을 알았다네. 내가 던진 말과 행동의 결과를 외면하면 안 되는 것이야. 긴장과 두려움이 동시에 손바닥 위에 놓여 있었네. 그것을 붙잡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갔네.
너와 내가 멀리 떨어진 시기에 그 무게는 더욱 분명하게 다가왔어. 곁에 없더라도 내 마음은 늘 그대를 향해 있었지. 나는 그 부재 속에서 오히려 그대의 존재를 꼭 쥐고 다녔네. 잃을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미 그것이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었네. 부재는 그대를 드러내는 방식이었어.
그리하여 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네. 거창한 선언도, 운명적인 고백도 아니었지. 다만 내 안에서 넘쳐흐른 감정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작은 시도였을 뿐이야. 종이에 남은 문장은 사소했으나, 그것을 적는 순간만큼은 그대와 이어져 있다는 확신이 생겼네. 편지는 나를 지키는 방법이자 그대와의 관계를 손안에 붙드는 방식이었어. 그렇게 나는, 내가 쥐고 있던 작은 무게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네.
겸. 나는 그대와의 관계를 가벼운 바람처럼 흘려보낼 수 없음을 알았네. 내 글은 점점 놀이가 아니라,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아갔지. 그러나 책임은 언제나 나를 온갖 상념으로 이끌었네. 나는 서두를 수 없었기에 오히려 걸음을 늦추어야 했어. 그대와의 거리가 때로는 불안했지. 그러나 나는 그 속에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갔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마음의 파동이 잦아들며 차분히 제 자리를 찾아가곤 했지.
겉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었으나, 고요 속에서 그대의 존재는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네. 침묵은 공허가 아닌 그저 나를 정돈하는 과정이었어. 나는 언제나 그대의 무게를 느꼈네. 마치 고요한 밤하늘이 별빛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듯, 안갯속에서 그대는 더욱 또렷해졌네.
그리하여 나의 마음은 마침내 충만으로 흘러갔네. 함께하지 못하는 시간조차 내게는 풍요의 순간이 되었지. 그대를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나는 기쁨을 배웠네. 닿지 않더라도, 내 안에서는 이미 하나의 온전함으로 빛나고 있다는 것. 이 충만은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이 스스로 길러낸 열매였네.
나는 이 감정이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 알 수 없네. 그러나 지금의 충만이야말로 오늘의 진실일 것이네. 그것이 그대를 향한 나의 고백이며, 동시에 나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기도 하네. 나는 이 작은 편지 속에서 그 모든 과정을 간직하고 있네.
수많은 날이 지나며 내 안의 불안이 자꾸 마음을 무너뜨리려 했지만, 나는 끝내 그 감정 앞에 서기를 선택했어. 나는 나의 고백이 언제나 완전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네. 흔들리는 마음, 부끄러운 두려움, 그리고 때로는 너무 서툰 언어가 내 편지 곳곳에 배어 있을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숨기지 않으려 하네. 나의 미숙함마저도 그대와의 교류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믿기 때문이야. 완벽하지 않은 문장들이라도, 그대에게 닿는다면 그 자체로 버텨온 시간의 증거가 되리라 생각하네. 나는 나 자신에게조차 설명하기 어려운 이 고백을, 상처 입은 몸으로 지켜내고 있지.
그러니 겸, 내가 지금 그대에게 쓰는 이 편지는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나의 의지라네. 상처와 불안 속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 자리에 서 있고, 그대와 이어진 마음만은 지키고 싶네. 이 마음이 어떤 결말을 맞더라도, 그대가 내 삶에 남겨준 흔적은 나를 지키게 했어. 그것을 끝내 저버리지 않을 것이야.
나는 이 길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하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 나는 포기하지 않았음을 말하고 싶네. 수없이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나는 다시금 펜을 쥐었지. 그 반복은 집착이 아니라 끈기였고, 그 끈기는 곧 내가 그대를 향해 얼마나 진심인지 드러내는 증거였네.
상처는 나를 약하게 함과 동시에 그대에게 다가갈 용기를 길러주었네. 다시 일어나는 그 반복 속에서, 나는 그대를 향한 마음이 단순한 설렘을 넘어섰음을 알았네. 그것은 이제 내 삶의 버팀목이 되었고, 나는 그대 앞에서만큼은 이 의지를 감추지 않으려네.
그대에게 품은 감정은 아직도 샘처럼 맑게 솟아오른다네. 시간이 흘러도 그 마음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지. 나는 그대의 존재만으로도 내 안에서 새로운 감정이 태어나는 것을 느낀다네. 그것은 설렘이자, 두려움이자, 동시에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네. 나는 이 마음을 억누르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대에게 고백하고 싶네.
그래서 이제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야. 새로운 의지로 선언하고 싶네. 겸. 나는 그대를 향해 나아가려는 결심을 굳혔네. 쉼 없이 격동하는 나이지만, 그 불완전 속에서 피어난 열정만큼은 진실이라네. 나는 이 불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내 삶의 가장 귀한 증거로 붙들고 싶네.
이 모든 불안과 흔들림을 지나 이제는 안착할 자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 그대와의 관계가 언제나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은 집을 세우고 싶네. 불안이 아니라 평온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우리 사이를 채우고 싶다네.
그러므로 이 편지의 끝에서 나는 하나의 고백을 남기려네. 겸. 그대는 나에게 불안의 원인이자 동시에 축복이야. 그대는 내 삶의 쉼터 같은 존재가 되었지.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그대와 마주하는 자리에서 안도와 기쁨을 찾고 싶다네. 이 편지는 그대를 향한 나의 집이며, 동시에 우리의 축복을 기원하는 기둥이 될 것이네.
진정한 관계는 거대한 계시가 아니라,
작은 책임과 감정들을 성실히 붙드는 데서 자란다.
그 작은 축적이야말로
흔들림 속 우리를 이어주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 된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