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동해 07화

해답

스물하나

by 김가희





그날의 공기는 묘하게 팽팽하였네. 대화가 오가기도 전에 이미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지. 누군가는 그 선 위에서 자신의 정의를 말했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저항했네. 나는 그 둘 사이에 서 있었다네. 그들의 말투와 시선이 나를 시험하는 듯했지만, 정작 나는 그 싸움의 이유를 묻고 있었지. 대체 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규정하려 하는가.


다툼은 목소리보다 더 조용한 방식으로 이어졌어. 웃음 뒤에 감춰진 판단, 동의처럼 포장된 경쟁. 나는 그 모든 흐름을 지켜보며, ‘누가 더 옳은가’보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반응하게 만드는가’를 관찰했네.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경계심으로 바뀌었는지 되짚어보았어. 인정은 늘 상처를 동반하는 법이라네. 그러나 그 상처가 나타내는 것은 단 하나. 나는 여전히 타인의 시선 안에서 나를 확인하고 있던 걸세.


복도 끝 창문에 기대어 그날의 말을 곱씹었어. 우리의 말은 잘못된 것도, 그렇다 해서 옳은 것도 아니었지. 다만 각자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어를 휘둘렀을 뿐이었다네. 그 속에서 나 역시 방어의 언어를 골라 그들을 공격했음을 인정했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 세계에서 배운 생존의 방식이었던 것이야. 나를 지키는 일, 그리고 내 안에 갇히는 일 사이의 경계는 얼마나 미세하던가.



오랫동안 사회가 나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그 믿음은, 언제부턴가 나를 감시하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네.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은 결국 내 마음의 결을 무디게 만들었지. 안정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감추고 있었음을 인정했네.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는, 부끄러웠던 그 깨달음은 이내 나를 해방으로 이끌었어. 그것은 내가 두려움을 외부로부터 분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네.


그날 밤, 나는 침묵을 벗어나 기록을 택했네. 불빛 아래 종이를 펼치고 오늘의 사건을 가능한 한 차갑게 적었지. 그 문장들이 감정을 덜어내며 선명한 그림을 남겼다네. 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았어. 어둠 속에 앉아 형태를 갖춘 감정을 분석하기 시작했지. 그 끝엔 욕망이 있었어. 나를 증명하고자 하는 욕망 말일세. 결국 내가 견디고 있던 건 외부의 시선이 아니었던 것이야.




예상치 못한 변화는 가장 평온한 날에 찾아오더군.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문을 열었을 뿐이었지. 그러나 익숙한 자리가 낯설게 느껴졌다네. 운명이라 부를 만큼 거창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미세한 흔들림이 내 마음의 축을 움직였네. 세상은 종종 그처럼 조용한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버리곤 하지. 나는 그 변화의 기류를 놓치지 않았다네.


사람들은 제 목소리를 내며 웃고 떠들었네. 그들 사이에 앉아 있으면서도, 어김없이 한 발자국 떨어진 듯한 기분을 느꼈어.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 사실이 불편하지 않았네. 그들의 웃음이 마음에 파문처럼 번져오더군. 오랜만이었어. 나를 감싸는 공기가 따뜻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누군가의 웃음은 이유를 묻지 않고도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 그 짧은 순간, 나는 세상과 화해하고 있었다네.



그렇게 하루는 흘렀고, 해가 기울 무렵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잔을 맞대게 되었네. 낮의 공기와는 다른 부드러움이 그 자리를 채웠지. 서로의 이야기가 큰 의미를 가지진 않았지만, 의미를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오히려 위로가 되어 흩어졌네. 삶이란 꼭 커다란 목적 아래에만 존재하는 건 아니지 않겠나. 흩어진 웃음, 허공을 채우는 소리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다시 살아나고 있었네. 그렇게 작은 평화가 쌓여 나를 되돌리고 있던 걸세.


새벽녘.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시간.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나의 마음. 낮의 환희와 밤의 고요가 같은 무게로 공존하는 순간. 나는 그 균형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쉬었다네. 세상은 돌고, 관계는 흐르고, 나는 그 회전 속에서 나를 다시 배우고 있었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식이었네.




떠남이란 완성의 또 다른 형태지.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잃는다는 두려움에 머물지 않았다네. 머물렀던 자리의 온기는 여전히 손끝에 남아 있었으나, 그 따뜻함이 나를 붙잡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편안하게 했어. 이제 나는 떠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네. 삶의 흐름 속에서 나의 몫이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지. 조용하지만 깊은 그 확신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네.


자리를 정리하며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질서를 바라보았어. 생각보다 단순했던 세상의 규칙 속에서 나는 복잡한 감정의 실체를 잃어버렸던 것이야. 더는 사람들의 반응을 해석하지 않아도 마음이 무너지지 않았네. 오히려 의지의 결이 더욱 뚜렷해졌지. 내가 나를 믿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네.



시간은 여전히 나를 감싸고 있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이곳에서, 나는 이제 더 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고, 다만 존재를 느끼는 쪽이 쉬워졌다네. 제자리를 찾은 감정 그 아래에서 단단한 중심을 발견했다네. 세상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에 휩쓸리지 않아.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의 속도를 정돈했네. 타인의 시선이 멀어질수록, 내 시야는 넓어져 갔다네. 나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했고, 왜 그토록 인정받고 싶어 했는지를 차분히 떠올렸지. 그러나 그 모든 이유를 분석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있었어. 진정한 풍요란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의 평정 속에서 싹트는 것이란 걸. 그것이 마음의 벽을 천천히 허물었네.


그리고 나는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네. 충동의 걸음이 아닌 명료한 의식적 결과의 걸음. 누군가의 시선을 향한 갈망도,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욕심도 없었다네. 그저 나의 일을 하듯, 나의 하루를 이어가듯,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삶은 흘러갔지. 불길은 더 이상 타오르지 않았지만, 그 잿빛 온기는 오래도록 내 안을 덥혔다네. 나는 마침내 스스로의 평화를 소유한 사람이 되었지.




나는 오랜 시간의 사유 끝에 다시 이 땅으로 내려왔다네. 세상은 역시나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네. 다만 달라진 것은 나를 대하는 나의 자세가 달라져 있었다는 것이야.


모든 것을 이해하려던 한때에서 걸어 나와 이제는 그저 그것을 다루는 법을 배웠네. 진실이란 거대한 신념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실천되는 의식이었지. 나는 그 질서를 내 안에 세우고 하루를 시작했네. 생각은 더 이상 흩어지지 않고 손끝으로 닿을 만큼 가까워졌어.


햇살이 들자 방 안의 사물들이 제자리를 찾는 듯했네. 차를 내리고, 책을 펼치며, 나의 생각이 실제가 되는 순간을 느꼈지. 사유가 삶과 맞닿는 자리, 그곳이야말로 내가 머물러야 할 세계였다네. 단순함 속 풍요. 열정의 잿더미 속에서 안정된 온기가 피어올랐어. 나는 그것을 완성의 시작이라 불렀다네.



관계는 여전히 오고 갔고, 세상은 여전히 복잡했지.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그 흐름에 휘둘리지 않았다네. 감정이 지나가면 사유가 남고, 사유가 흩어지면 실천이 남는다네. 세상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의 형태를 유지하는 법을 배웠지. 그 순간은 내가 처음으로 세계와의 균형을 이루었던 잊을 수 없는 시점이야.


밤이 오면 매일 같이 불을 켰네. 그 작은 빛으로도 충분했지. 나는 글을 쓰고, 생각을 기록하며, 내 하루를 쌓아 올렸다네. 그 쌓임이야말로 나의 왕국이었지. 금빛으로 빛나는 건 재산이 아니라 일관된 마음의 무게일세. 나는 그 무게를 지키며 살아가기로 결심했다네.


끝은 또 다른 시작의 문턱일 뿐이지. 나는 오늘도 내 자리에 앉아, 삶을 일로 삼고, 마음을 손으로 옮긴다네. 그 시절 나는 세상의 불완전함, 그것의 순환 속에서 나의 질서를 세워갔어. 인생에 더 이상의 답안지에 대한 모색은 없었다네. 이미 나의 삶이 모든 것의 해답이 되었으니까.





보호라 믿었던 벽이 감옥이 되었을 때

생각은 문을 찾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유를 배워 그 문을 열어야 한다.


{동해} 빈자리 위의 충만을 붙잡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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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