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니까 더 하고 싶잖아!
“깜짝이야. 나 지금 예진이 손잡을 뻔했어.”
가까이 다가 온 나에게 그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터키에 오기 직전까지 만나면 항상 손을 잡고 다녔으니 '관성의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오빠는 그때부터 더욱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 여행 중에는 우리 둘이 사귀는 거 일행들에게 티 내지 않기로 했지...'
나와 거리를 두고 바다를 감상하는 그를 뒤로하고 예쁜 척을 한껏 하며 셀카를 찍고 있을 때였다. 선규 오빠가 단체메시지창에 도촬 한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갈라타 다리 근처에서 은상오빠와 내가 마치 헤어지는 연인처럼 등을 지고 각자의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진이었다.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선규오빠, 우리는 지금 비밀연애 중이야. 헤어지는 게 아니라 사귀는 중이라고. 아무도 그걸 모를 뿐.'
스킨십은 못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음악편지를 보내왔다. 마치 '예진아, 우리가 다른 연인들처럼 표현은 못하지만 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블루투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달랏 여행 중 아침에 우연히 듣고 행복해진 노래였다고 말한 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아름다운 멜로디에 이토록 찬란한 가사라니! 명곡이 아닐 수 없다.
♬
나는 너 하나로 충분해
긴 말 안 해도 눈빛으로 다 아니깐
한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해
<폴킴 - ‘모든 날, 모든 순간’>
밤에는 유람선을 타고 이스탄불 신시가지에서 구시가지로 넘어갔다. 여행 초반에 배를 타고 일단 물을 건너면 그야말로 여행하는 기분이 들어서 참 좋다. 상쾌한 시작이 된달까? 그런데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찬란한 야경을 보며 밤바람을 맞으며 옆좌석에는 나의 소중한 연인이 있었다.
"오빠, 나랑 터키 오니까 기분이 어때요?"
"너무 좋지."
"그런데 너무 제약이 많네."
"마음 같아선 여기서 키스하고 싶다. 할까?"
"응. 하자"
"그건 안돼~."
그때 체리언니와 선규오빠는 유람선의 다른 쪽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거기서는 우리가 보이지도 않을 텐데... 아니, 남녀가 사귀는 게 죄도 아니고 이렇게 조심하고 숨길 일인가? 이곳에 와서 우리가 한 스킨십은 고작 숙소 부엌에서 뽀뽀 1초, 레스토랑 계단 올라가며 뒤에서 몰래 손잡기 1초뿐이었다.
나는 한쪽 귀걸이가 사라지던 한국에서의 데이트를 떠올렸다. 여성이 귀걸이를 하면 1.5배 예뻐진다고 하길래 귀찮아도 꼭 귀걸이를 챙겨서 하고 나갔다. 그런데 집에 와서 보면 한쪽 귀걸이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매번 그런 건 아니다. 귀걸이가 사라진 날은 우리가 열렬히 키스한 날이었다. 그냥 여행 오지 말고 한국에서 데이트나 할 걸 그랬나 보다.
터키에서도 희망은 있었다. 체리언니의 센스 있는 제안으로 여행 마지막날은 아파트형 숙소가 아닌 호텔에서 각방을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행 마지막 날은 피로가 축적되는 데다, 한국까지 10시간 넘게 이동해야 하니 각자 푹 쉬고 다음 날 비행기 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오, 이날이 기회다! 9박 10일간의 여행에서 우리가 단둘이 같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날. 그럼 이날이 우리의 역사적인 첫날밤이 되는 건가?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한국에서 데이트 중 그가 내게 말했다.
"마지막 날 같이 있을 거죠? 예진이가 내 방으로 올래요? 아님 내가 갈까요?"
누가 오던 누가 가던 뭐가 중요한가요? 결국 우리는 만날 텐데. 후훗. 와인이나 한 병 가지고 오세요. 음악도 로맨틱한 걸로 준비하고. 연애할 때 파워 J인 내가 생각해 둔 음악이 있긴 한데, 이번엔 가만히 있을게요. 당신이 잘 계획해 주시길 바라요. 찡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