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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아 Oct 20. 2024

애인을 애인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유

내가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오빠, 비행기에서 좀 잤어요?

  ”아뇨. 거의 못 잤어요. “

  “왜요?”

  “설레어서.”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나눈 대화에 내가 더 설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헤어질 때와는 달리 재회의 포옹은 할 수 없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화만 할 뿐이었다. 이번 여행은 일체의 스킨십이 금지된 여행이었다. 스킨십뿐만이 아니다. 모든 말과 행동, 미묘한 표정까지 조심해야 했다. 출국 이틀 전, 한강에서 손을 꼭 잡고 산책을 하며 우리는 이런 대화를 나눴다.    

 

  “터키에서 오빠랑 손잡고 싶으면 어떡하지?”

  “아마 그럴 기회가 있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걸리면 안 돼. 기분 나빠할 거야.”

  “그럼 언제 체리언니랑 선규오빠한테 우리 사귄다고 말할 거야?”

  “여행 갔다 와서 계속 그 사람들이랑 보게 되면 그때 얘기하자.”     


  체리언니와 선규 오빠는 우리와 9박 10일 동안 함께할 일행이었다. 은상오빠는 우리 사이를 그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렇게 남 2, 여 2의 여행... 아니, 커플 한쌍과 남 1, 여 1 총 4인의 터키여행이 시작되었다. 조금 답답하긴 했지만 이 상황이 은근히 재밌고 스릴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연예인들이 비공개 연애 할 때 이런 기분일까? 마음껏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음악으로 대화했다. 우리의 숙소인 이스탄불 중심가의 아파트에서는 은상오빠가가 선곡한 아이유의 <좋은 날>이 울려 퍼졌다.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 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나는요 오빠가 좋은 걸 어떡해

                  <아이유 - ‘좋은 날’>   



 터키의 여름은 예상대로 더웠다. 온 세계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도착 첫날은 맛있는 케밥을 저녁으로 먹고 터키 대표 맥주인 에페스 맥주로 시원하게 마무리했다. 장거리 비행에 지친 우리들은 한방씩 차지하고 수면모드로 돌입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바로 옆방에서 내 남자친구가 자고 있다니. 하지만 그 방에 갈 수는 없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가 없었다. 아, 맞다. 여행 가면 아침에 산책한다고 했었지. 나는 오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디예요?

-갈라타 다리요. 아침 산책 중. 잘 잤어요?

-혼자 가니까 좋나요?

-같이 가고 싶어도 갑자기 둘이 나가면...      

-보고 있어도 그리운 느낌 알아요?

-나도요. 이런 건 단점이네.   


  잠시 후 산책을 마친 그가 돌아왔다. 간단히 조식을 먹은 후 숙소 근처 도보로 갈 수 있는 부두가로 이동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해협의 경치를 감상하며 본격적인 터키 여행을 시작하였다. 넓고 푸르게 펼쳐진 바다 뒤로 둥글둥글 뾰족뾰족한 모스크, 푸른 하늘을 스케치북 삼아 이리저리 그림을 그리는 갈매기,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이어주는 갈라타 다리... 이 모든 것의 조화가 '여기가 바로 유라시아의 터키야!'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조금씩 애타는 내 마음과 함께 애인을 애인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조금은 이상한 여행은 계속되고 있었다.


                                           

갈라타 다리와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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