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포기하고 선택한 것
나는 원래 혼자 여행하는 걸 좋아했다. 10년 전, 혼여행의 매력에 빠진 이후로 특히 장거리 여행은 주로 홀로 떠났다. 나와 단둘이 하는 여행은 자유롭고 편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짜릿한 액티비티를, 맛있고 이국적인 음식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아쉬웠다. 여행이 끝나고 그 순간을 함께 추억할 사람이 없음에 결핍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여행지에서 늘 혼자는 아니었다. 우연히 숙소에서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기도 했고 때로는 인위적으로 동행자를 찾기도 했다. 마지막 유럽여행에서는 온라인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여 함께 다닐 사람을 구했다. 주로 식사나 액티비티를 같이 하는 '부분동행'을 했다. '부분동행'의 장점은 리스크가 적다는 것이다. 만약 서로 성향이 맞지 않더라도 목적만 달성하고 다시 안 보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여행을 같이 계획한 사람들이 아니기에 일정이나 이동 루트가 달라서 또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장점에 비해 단점도 뚜렷했다. 해외에서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추억을 나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외국에서 우연히 일정이 맞아 밥 한번 같이 먹은 사람을 한국에 와서 시간과 비용을 들여 또 만나는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 사는 동행은 더더욱 다시 보기 힘들었다. 정말 강력한 끌림이 있었다면 또 모를까.
이런 연유로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전체여행' 동행자를 구하는 게시글이었다. 8월에 터키여행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클릭했다. 총 9박 10일 일정이며, 현재 3명이 모였고 한 명만 더 모집한다는 글이었다. 글 작성자는 영어가 가능하고 렌터카로 여행을 많이 해봤다고 본인을 소개했다. 나는 바로 글쓴이에게 쪽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터키여행 동행글 보고 쪽지 드려요. 혹시 3분이 지인이신가요?
-아니요. 저희도 온라인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역이 어디세요? 지금 잠실 카페에서 여행계획 짜는 중인데 시간 되시면 나오실래요?
-어? 저 근처 살아요.
-잘됬네요! 와서 한 번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같이 가시죠!
이것은 인연이 분명했다. 우리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멤버들이 모여 있었다. 일요일 저녁,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J인 나는 이렇게 즉흥적인 만남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나가야 할 타이밍이다. 다들 우리 동네 사람들인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곳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 3명이 모여 있었다. 남자 2명과 여자 1명.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알고 보니 마지막 한 명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고 했다. 좋은 사람들 같았다. 이글에 나오는 은상, 선규, 체리가 그 멤버들이다. 그중 선규오빠와 체리 언니는 전체동행으로 여행을 이미 해봤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한국에 와서도 연락하며 뒤풀이도 하고 결혼식에도 가고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내가 원했던 게 바로 그런 거였다. 짧게 만나고 끝나는 하루살이 같은 만남이 아니라 인연을 이어가고 싶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도 있는데 그 먼 타지에서 같이 여행을 하고 그걸로 끝나버리는 게 내심 아쉬웠나 보다. 우리는 그날 3시간 정도 대화를 했고 나는 마지막 멤버로 단체 메시지 방에 초대되었다. 이렇게 나는 얼마 전까지 아예 몰랐던 사람들과 터키에 함께 오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이 모임의 방장인 은상오빠와 연인이 되었다.
♬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이선희 - ‘그중에 그대를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