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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페이정윤 Oct 15. 2024

착해빠진 며느리는 추석에 여행갑니다.

 어머니, 여기 이집 떡볶이 맛있는데 우리 일인분만 먹고 갈까요?


아님 넘 힘든데 식혜라도 한잔 사먹어요. 아유... 당 떨어진다."


  


명절을 앞 두고 장을 보러 나온 날.


피곤하지만 북적북적한 시장이 활기차고 재미있다.


장을 한참 보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잠깐 쉬고 싶은 맘에 살짝 눈치를 보며


제안을 해보지만 이내 매몰찬 대답만 돌아온다.




" 무슨.... 사람 많은데 길거리에서 뭘 먹고 있어?


  집에 가서 커피 타서 먹음 되지....


  그리고 식혜도 할건데... 무슨 돈을 써?


  시간 없어 빨리 와!!!"




난 본전도 못 건지고  기분만 상한다.


차도 가져와서 조금 여유 있게 다녀도 되건만


어머니는 항상 마음은 이미 집에 가셔서 음식 장만 중이시다.


몸은 시장에, 마음은 집에...


 달리기를 할때 출발을 기다리며 출발선 앞에 서서 준비하는 사람처럼


항상 어머니는 바쁘셨고 나는 덩달아 뛰어다녔다.




삐친 입이 나올 겨를도 없다.


애써 속상한 맘도 진정시킨다.


어차피 속상해 봤자.. 나만 손해지..


이런 일이 한두번도 아닌데 뭘...오케이 하는게 이상한거지.


에라이 커피는 무슨 커피냐.




어릴때 시장가면 바쁜 엄마를 쫓아다니며


어른들 바지와 신발만 빽빽하게 보이는 그 속에서


행여 엄마를 잃어버릴까 엄마 뒷모습만 바라보며 정신없이 걸었다.


끌려다니다시피 하는 그 바쁜 와중에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도 먹어보고 싶고, 어묵국물 한컵도 먹어보고 싶었다.


결혼해서 애를 낳았어도 시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는 상황이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시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간 나는 엄마따라 나선 철없는 아이처럼 쫓아다니기 바쁘다.




일주일 아니 이 삼주일 전부터 우리집은 명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같이 사는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을 해야 했다.


손이 크신 시아버지는 시골에서 잡은 소고기,


그것도 전혀 손질되지 않은 고기를 2~30키로씩 사오셨다.


국거리인지 불고기감인지도 모를 고기를


나는  어머니와 함께  손질하고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놓았다.




분명 국거리인것 같은데   살짝 얼려 시장에 가서 얇게 썰어온다.


아무리 배를 갈아넣고 양파를 넣고 키위를 넣어도 고기는 뻣뻣하다.


불고기거리 사자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고기가 너무 많다.


이번에도 고기는 전부 국거리인게 분명하다.




설에는 가래떡을 해야 한다.


손이 크신 어머니는 쌀을 한말이나 두말 정도 방앗간에 맡기고 오신다.


떡을 찾아오고 골고루 넓게 펴서 찬기운에  말리고 적당히 굳히면 이내 썰어야 한다.


떡의 굳기를 확인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손이 얼마나 아플지의 여부는 떡의 굳기에 달려 있으니 어머니는 장금이처럼


진지하다 못해 사뭇 비장하다.




설날은 그래도 양반이다.


추석은 송편을 빚어야 하는데 속을 종류별로 만드신다.


콩, 설탕깨  거기에 시간이 되면 밤도 으깨서 밤속도 거피팥속처럼 만드신다.


쌀을 빻아 준비하고  색색으로 따로 만들고, 반죽을 하고   속을 넣는다.


찜기가 제법 큰데도  하루종일 떡만 쪘다.


아이들이 어릴 땐 모두 모여 다 같이  만들고  웃고 떠든다.


형님들 가시면 뒷치닥거리는 다 내 몫이다.




시장에서 파는 썰어 놓은 떡을 사다 떡국을 끓이면  맛이 없다


송편도 파는 떡은 맛 없다


말도  안되는 논리를 펴시며


그렇게 힘들게 명절 준비를 했다.




나는 파는 떡이 더 맛있더라....













진두지휘 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팔순이다.


마음은 여전히 바쁘지만 몸이 말을 안듣는다.


그렇게 열심히 장을  보고 큰 손으로 음식도 많이 하시더니 이제는 무엇 하나 쉽지 않다.


내가 간단하게 전도 사다 놓고 떡도 사다 놓고


 불고기도 사다 놓길 바라신다.


나물도 아주 조금씩 장만해서 준비해 주길,


이번 명절도 제발  덜 힘들게 넘어가길  바라는 눈치다.








명절 대신  한식날 한꺼번에 명절과 제사를 치르기로 한 4년전부터


우리 가족은 명절에 여행을 간다.


큰며느리가 버젓이 있음에도 아들과 손주들만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이 황당한 시츄에이션에 나는 밥이 하기 싫어졌고


그들에게 밥 해주기 싫으니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못하셨다.


할만큼 했지...그래..


너처럼 착해 빠진 며느리가 어디 있을라고...


니들도 편히 살아라.




어머니는 이번 추석에도 미리미리


나에게 무언의 메세지를 보내신다.






이번 추석에는 설거지도 잘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


떡과 식혜만  먹여 보내는건  좀 그렇잖아...


네가 뭐 좀 더 준비해 주고 나가면  좋긴 할텐데....


밥이랑 국 정도는 아버지랑 내가 충분히 하니까 걱정말고


너무 신경쓰지는 말고...


너 맨날 바쁜거 내가 잘 알지.






된장, 옌장.... 신경이 더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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