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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body, Somebody, Nobody?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일까.

by 타인head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앞에서 강의를 진행하시던 분이 갑자기 참가자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고 청중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보면서 조용해졌다. 정적 속에는 ‘내가 답해야 하나?’라는 미묘한 눈치와 망설임이 흐르고 있었다.


몇 초가 지나자 강의자가,

“Anybody?”


여전히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Somebody?”


그리고 결국,
“...Nobody?”


그 질문은 허공에 떠올랐다가, 강의자가 스스로 답하고 넘어갔다.




우리는 일상에서 Anybody, Somebody, Nobody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때로는 비슷하게 느껴져 섞여 쓰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세 단어는 서로 다른 존재의 감각을 담고 있다. 특히 Anybody와 Somebody는 비슷해 보여도 삶 속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위의 상황에 빗대어 보자면,

‘Anybody’는 “누구든 괜찮습니다, 아무나 말해보세요.” 라는 뜻이다. 듣는 사람 전체를 향한 질문이다. 좀 더 풀어 말하면, “그냥 아무나, 누구든 상관없어요.”라는 말이다.


‘Somebody’는 “내 질문에 답을 아는 사람은 이야기해보세요.”라는 뜻으로, 전체가 아닌 특정한 사람을 지목한다.


그러다 결국 아무도 나서지 않았을 때, 그 자리는 ‘Nobody’가 된다. 말 그대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 삶에도 수많은 anybody들이 있다. 그러다 운 좋게 몇 명의 somebody를 만나고, 또 적지 않은 nobody도 경험한다. 수많은 사람 중 대부분은 내 삶에서 anybody로 지나간다. 기억나지 않고, 이름도 모르고, 그저 흐릿한 배경처럼 남는다. 그 와중에 나에게 특별한 사람들도 있다. 부모가 그렇고, 형제자매 그렇다, 배우자가 나에게 그런 존재이고, 자녀도 특별한 존재다. 또한,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 중에서 어느 순간 somebody가 되는 존재도 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언뜻 생각해보면, 몸이 무겁고 속이 울렁거려 겨우 집으로 돌아가던 날, 지하철에서 말없이 자리를 양보해주던 나이 지극하신 아주머니. 출산 예정일이 지나 숨쉬기도 힘들던 어느 날, 기분을 달래기 위해 스타벅스에 가서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하려는데, 바리스타가 “오늘은 제가 드릴게요. 기운 내세요.”라며 가장 큰 컵에 초콜릿을 더 넣어 건넸던 순간. 그 분들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순간, 나에게 확실히 somebody였다.




그렇다면, 나는 또한 누군가의 삶에서 어떤 존재일까? 혹은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나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anybody였을 것이고, 또 어떤 순간에는 누군가에게 somebody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누군가의 삶에서 잠깐이라도 ‘somebody’였던 순간들이 무의미하지 않았기를,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순간을 떠올렸을 때 미소짓는 기억이였기를 바래본다. 모든 이에게 특별해질 필요는 없지만, 몇명 누군가에게는 기억될 만한 사람으로 한 번쯤 머물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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