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란 이야기
벌써 스무 해는 족히 지난 일이다. 홀로 여행길에 나섰던 어느 날의 이야기.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스운 기분도 들지만, 당시의 내게 그것은 무려 '보호자' 없이 떠나는 생애 첫 독립 선언과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저렴한 좌석을 찾다 보니 방콕을 경유해 로마로 가는 타이항공 티켓을 손에 쥐게 되었다.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공항버스에 오르는 것부터 출국 수속을 밟고 기내 좌석을 찾아 앉기까지, 모든 과정이 설렘 반 두려움 반이었다. 무슨 일이 생겨도 그저 어떡하냐며 막막하게 바라볼 상대가 곁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어른이 된다는 건 예상보다 흥미로우면서도, 동시에 꽤나 묵직한 책임감을 짊어지는 일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
기내 방송이 흐르고 비행기가 드디어 활주로를 박차 올랐다. 안전궤도에 진입하자 태국 전통 의상을 모티브로 한 이국적인 유니폼의 승무원들이 기내를 돌기 시작했다. 그들은 승객들에게 따뜻한 물수건과 함께 꽃 한 송이씩을 건넸다. 항공기 로고에도 새겨져 있던 보랏빛의 큼지막한 '로열 오키드'였다. 기내에서 생화를 선물 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뜻밖의 환대는 가슴 속 깊이 굳어있던 긴장감을 사르르 녹여주었다. 긴 비행 내내 나는 간이 테이블 한 귀퉁이에 그 꽃을 올려두고, 보드라운 꽃잎을 가만히 매만져보곤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도착해 시들해진 꽃과 작별하던 순간, 마치 여행길에 만난 정든 친구를 떠나보내는 듯한 아쉬움이 밀려올 정도였다.
그날의 로열 오키드만큼 큼직하진 않더라도, 몇 해 전부터 키우고 있는 호접란 화분에서는 그와 꼭 닮은 작은 나비들이 피어난다. 초겨울이면 어김없이 꽃대를 올리고, 겨우내 나비 떼가 날아든 듯 화려한 꽃망울을 선보인다. 호접란(胡蝶蘭)이라는 이름 자체가 '나비를 닮은 난초'라는 뜻이다. 학명인 팔레놉시스(Phalaenopsis) 역시 그리스어로 나방을 뜻하는 'Phalaina'와 형상을 뜻하는 'Opsis'가 합쳐진 말이다. 같은 의미로 영어로 '모스 오키드(Moth Orchid)'라고도 불린다. 활짝 핀 꽃을 보고 있으면 이 이름들이 절로 납득되지만, 그 유래를 굳이 따져보자면 식물학자가 이 꽃을 처음 발견하던 그 낭만적인 순간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1825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칼 블룸은 인도네시아 자바 섬을 탐사 중이었다. 수풀이 우거져 낮에도 어둑했을 열대우림 속에서, 그는 나무줄기 높이 매달려 하얗게 빛나는 신비로운 나방 무리를 발견했다. 바람을 타고 옅은 날갯짓을 반복하는 그들이 언제쯤 날아가려나 한참을 숨죽여 지켜보았겠지만, 나방들은 결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곤충이 아니라 나무에 몸을 기대어 피어난 난초 꽃이었으니까. 그는 이 아름다운 착각을 기리기 위해 '팔레놉시스'라는 이름을 세상에 내놓았다.
보통 우리는 화원에서 나비 떼가 이미 만개한 호접란을 사 들고 온다. 호접란은 개화 기간이 상당히 길어서 환경만 적절하다면 두어 달 이상 그 우아함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이듬해에 그 나비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분명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왜 몇 년째 꽃을 보여주지 않는지에 대한 집사들의 하소연을 흔히 듣게 되는 이유다.
호접란이 꽃눈을 틔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저온 처리'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밤 온도가 15도 내외로 2~3주간 떨어져야 한다. 호접란은 이 서늘한 기운 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감지하며 비로소 꽃대를 올릴 결심을 한다. 역설적이게도 사시사철 따뜻하고 안온하기만한 환경에서는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때로는 식물도 안주한다. 성장을 위한 도움닫기에는 약간의 시련이 반드시 필요한 셈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도 호접란의 개화와 닮아있는지 모르겠다. 차가운 공기를 견디며 꽃눈을 준비하는 난초처럼, 우리 역시 삶의 계절이 바뀌며 찾아오는 시린 고독과 낯선 두려움을 묵묵히 통과해 낼 때 비로소 자신만의 꽃을 피워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겨울의 서늘한 창가에서 기어이 꽃대를 밀어 올린 호접란을 보며 생각한다. 오늘의 내가 겪는 이 사소한 역경 또한, 내일의 나를 피워내기 위한 필연적인 온도일 것이라고. 그렇게 피어난 우리의 존재가, 언젠가 길 잃은 누군가의 여행길에 건네진 오키드처럼 다정한 환대가 되어줄 수 있기를. 행복은 그렇게, 추위를 견뎌낸 이들에게 가장 먼저 날아오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