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스트로메리아 이야기
사랑이 없다면 인간사는 얼마나 무미건조할까. 세상의 모든 흥미로운 이야기는 사랑에서 시작된다. 젊은 날의 풋풋한 열정,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염, 꼬물거리는 어린 생명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애정, 그리고 서로의 손을 꼭 맞잡은 채 기댄 황혼의 온기까지. 구전동화부터 소설,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사랑'이라는 테마가 빠졌다면 그 수많은 서사 중 태반은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허구의 영역뿐만이 아니다. 사랑이 한 사람의 생을 얼마나 찬란하게 빚어내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할 터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어냈을 무렵,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모여 재잘거리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수줍은 고백에 한 친구가 손뼉을 마주치며 물어왔다.
"남자친구가 고백한 거야? 어떻게 고백했어?"
그저 나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한 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그러마고 했을 뿐이라는 나의 대답에, 친구는 맥이 빠진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아무런 이벤트도 없었어?"
순간 꽤 당황스러웠다. 마땅히 받았어야 할 거창한 의식이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늦은 저녁, 집 앞 가로등 아래에서 나만큼이나 쭈뼛대던 젊은이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건넸던 물음과 화답하듯 피어난 내 미소.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온갖 클리셰가 범벅된) 식상하기 그지없는 장면이었지만, 그 후 며칠 동안은 밥을 먹을 때도 양치를 할 때도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만들던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런데 말 한마디에 그 순간이 서툴고 초라한 무언가로 전락해 버리는 기분이었다. 철없던 시절의 풍경이다.
이제는 누구도 내가 어떤 사랑고백을 받았는지 궁금해하지 않을 만큼의 나이는 충분히 먹은 듯하다. 그럼에도 굳이 'TMI'를 방출해 보자면, 나는 얼마 전 인생 단연 1등으로 꼽을 만큼 충격적이고도 짜릿한 사랑 고백을 받았다. 지난 몇 달간 회사 일이 더할 나위 없이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 가기 싫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에게 메신저로 징징거리곤 했다. 집에 가고 싶어, 여기 있기 싫어, 재미없어...
보다 못한 남편이 진지한 대화를 청해왔다. 혹시 말하지 못한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조심스레 묻던 그는 별다른 사건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몇 초간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더없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싫으면, 그만두고 놀아도 돼. 내가 더 열심히 일할게. 난 괜찮으니까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대출금과 생활비, 교육비의 압박 속에서 '그만두고 놀아도 된다'는 말이라니. 그 순간 내 눈에 비친 남편이 세상 어떤 동화 속 왕자님보다 멋져 보였다면, 그리고 새삼 그에게 다시 반해버렸다고 한다면 너무 현실 아줌마 같은가? 어쩔 수 없지만 진실은 진실이다. 젊은 시절 그가 건넸던 수많은 멋쩍은 고백과 청혼을 단숨에 제칠만큼, 이번 고백은 정말이지 근사했다.
일상은 소설도, 영화도 아니다. 삶의 짜릿한 행복은 예상보다 소소한 순간에서 비롯되고 지속된다. 그러니까 종종 우리 집 식탁을 장식하는 알스트로메리아 다발처럼 말이다.
알스트로메리아는 백합처럼 압도적인 우아함을 뽐내지도, 장미처럼 화려한 향기를 내뿜지도, 리시안셔스처럼 청초한 멋을 부리지도 않는다. "나는 꽃이다"라고 이마에 써 붙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길가에서 꺾어온 것처럼 친숙한 모양새다. 실제로 남편은 한동안 이 꽃이 아파트 화단에 피어나는 철쭉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 쏘아붙였지만, 듣고 보니 허니가이드가 점점이 박힌 모습이나 형형색색의 외양이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절화로서 이 꽃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생명력이다. 한 줄기에 여러 송이가 달리는 스프레이 형태로 피어나는데, 먼저 핀 꽃이 지더라도 뒤를 이어 다음 꽃봉오리들이 차례차례 터져 나온다. 물만 잘 갈아주면 꽃병에서 길게는 보름 이상 찬란한 자태를 유지한다. 화려하게 한때를 불태우고 사라지기보다, 묵묵히 제 순서를 기다리며 일상을 지켜주는 성실한 꽃이다.
알스트로메리아의 꽃잎 위에는 점점이 찍힌 선명한 허니가이드가 있다. 향기가 거의 없는 대신 벌과 나비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 새겨진 이정표다. 원산지인 안데스의 거센 바람 속에서 향기는 사치였기에, 살아남기 위해 제 몸 위에 벌과 나비를 부르는 정교한 지도를 그린 것이다. 친절은 때로 보이지 않는 향기가 아니라, 명확하게 그어진 선에서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 꽃은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소한 행복을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우리의 일상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꽃이 있을까. '우정과 새로운 만남'이라는 꽃말처럼, 이 꽃은 오랫동안 진정한 사랑과 함께하는 기쁨을 상징해 왔다. 일상이 굳이 타인의 눈을 휘둥그레하게 할 만큼 특별할 이유는 없다. 삶은 찰나의 화려함보다 늘 그래왔듯 안정적인 모습으로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일상의 사랑도 그렇다. 흩어지면 곧 사라질 공허한 표현보다, 밑바닥까지 온전히 믿고 기댈 수 있는 명확한 지도 같은 마음. 알스트로메리아가 그려낸 그 선명한 선처럼, 나를 향한 당신의 다정한 진심이 여기 있다는 확신. 오늘도 식탁 위에서 차례를 지켜 피어나는 알스트로메리아를 보며 생각해 본다. 오늘도 잔잔히 사랑받고,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