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디베어 해바라기 이야기
해바라기를 모르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해바라기 중에서도 '테디베어 해바라기'를 만나본 적이 있는지 묻는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지 모르겠다. 태양을 닮은 강렬한 황금빛은 그대로 간직한 채, 곰 인형처럼 보드라운 포근함을 머금은 왜성 겹꽃 해바라기 말이다.
이 꽃은 일반적인 해바라기 중 돌연변이로 인해 꽃잎이 겹겹이 생기는 개체들을 선별하여, 오랜 시간 품종 개량을 거쳐 정착시킨 원예종이다. 본래의 해바라기와 달리 씨가 맺히는 꽃등 부분까지 짧은 꽃잎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게다가 꽃가루가 거의 없어 실내에서 절화로 곁에 두고 감상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이렇게 설명해도 여전히 생소하게 느껴진다면, 기억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당신은 아마 이 꽃을 이미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미술 교과서의 어느 페이지에서 말이다.
여기 고흐의 해바라기가 있다. 열다섯 송이의 해바라기가 노란 배경 위, 노란 꽃병에 담겨 일렁인다. 황금빛 찬란함이 정점에 달한 이 작품은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런던 내셔널 갤러리 소장본이다. 미술사적 위대함은 잠시 접어두고, 우리는 오직 꽃의 얼굴에만 집중해 보기로 하자.
자세히 보면 열다섯 송이 중 일곱 송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해바라기와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얼핏 보아서는 꽃잎이 다 저버린 뒤 꽃등만 남은 시든 모습인가 싶지만, 그 색채를 보면 결코 생명을 다한 빛깔이 아니다. 이것은 꽃등이 있어야 할 자리를 수천 개의 짧고 부드러운 꽃잎이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겹꽃 해바라기'를 묘사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테디베어'라 부르며 사랑하는 바로 그 종이다.
믿거나 말거나, 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림 속 이 복슬복슬한 해바라기를 화가 특유의 화법이 만들어낸 예술적 허구로 치부했다. 해바라기란 모름지기 검고 넓은 원형의 꽃등 가장자리에 노란 꽃잎이 한 줄로 둘러진 꽃이라는 고정관념이 워낙 강력했던 탓이다. 여기에 '자신의 귀를 자른 미친 천재 화가'라는 고흐의 극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사람들은 그림 속 겹꽃의 형상을 그의 불안정한 내면이 빚어낸 환각이나 상상의 산물로 믿고 싶어 했다. 전형에서 벗어난 꽃의 형태가 작가의 굴곡진 생애와 버무려져 꽤나 드라마틱한 신화가 만들어진 셈이다.
하지만 고흐가 캔버스 앞에 두었던 꽃의 실물은 상상보다 훨씬 명료했을 것이다. 16세기 원예 도감에도 이미 겹꽃 해바라기에 대한 묘사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고흐가 살던 시대에 이 꽃이 실존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굳이 송이마다 다른 형태로 뭉개 그렸기보다는, 누군가의 정원에 화사하게 피어난 두 종류의 해바라기를 섞어 꽃병에 꽂아둔 채, 있는 그대로를 정직하게 관찰했다고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고흐는 왜 수많은 꽃 중 해바라기를 택했을까. 올곧게 태양을 향하는 성질에서 영적인 열망을 읽었을 수도 있고, 거칠고 투박한 해바라기의 외양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을지도 모른다. 혹은 노란 색조의 변주만으로 예술적 극치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계산된 선택이었거나, 장미나 튤립 같은 값비싼 꽃을 살 수 없었던 가난한 화가의 현실적인 타협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그의 해바라기에서 희망과 애정, 그리고 다정한 온기를 엿본다. 알려진 대로 고흐는 아를의 '옐로 하우스'에 동료 화가 고갱을 초대하며 이 연작을 그렸다. 우상과도 같았던 친구와 함께 지낼 날을 기다리며, 그는 노란 벽지에 어울리는 해바라기 그림으로 방을 단장했다. 곧 다가올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기분 좋은 울렁임이 캔버스 위의 두꺼운 물감 층마다 고스란히 박제되어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일이 생긴다면, 이 복슬복슬한 테디베어 해바라기를 꼭 한번 고려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낮의 태양을 머금었다가 꽃잎 사이사이로 농밀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 탐스러운 송이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그 선명한 노란빛은 품에 안아 들었을 때의 찰나적인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채색 공간 어디에 두어도 온도를 단숨에 높여주는 온화한 생동감이 있다. 게다가 꽃병의 물만 부지런히 갈아주면 열흘 남짓은 찬란한 황금빛을 유지하니, 그야말로 오래가는 즐거움이다.
뿌리를 떠나 꽃병 속에 담긴 꽃의 시간은 화분 속의 시간보다 짧고 애틋하다. 하지만 그 짧은 생애 동안 자신의 전부를 다해 노란빛을 뿜어내는 테디베어 해바라기를 보고 있으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어쩌면 나를 다해 온기를 뿜어내는 일임을 깨닫는다. 매일 아침 차가운 물을 갈아주며 꽃병의 안부를 묻는 이 사소한 행위가, 고흐가 고갱을 기다리며 붓을 들었던 그 마음과 조금은 닮아있기를 바라본다. 작은 태양이 전하는 다정한 설렘이 당신의 오늘에도 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