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부모가 아이를 우울하게 만든다고?

아이들의 우울을 부모 탓으로 돌리는 사회

by 정벼리

아침에 뉴스 헤드라인을 훑다가 어느 지점에서 시선이 꽂혔다. 80년대생 부모의 과보호가 초등학생들의 우울감을 불러왔다고. 정말 클릭하지 않을 수가 없게 헤드라인을 잘도 뽑았다. 기사에서는 한 전문가의 말을 빌려, 80년대생 부모로 통칭되는 요즘 부모들이 아이의 감정을 지나치게 수용하는 예민한 양육방식을 유행처럼 차용하였고, 아이들은 작은 좌절과 불안에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보호받게 되어 그 결과 불안 수준이 높고 작은 어려움에도 크게 좌절한다고 이야기하였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출생 연도를 통으로 묶어 일반화시키는 세대론이 이제 하다 하다 양육방식에까지 적용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양육태도는 세대에 따라 단일할 수 없다. 개인의 성격, 교육 수준, 경제적 배경, 가치관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게 되므로, 한 세대 안에서도 여러 가지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만 하더라도 극단적 자유방임부터 과잉개입까지 집집마다 너무나 다양한 양육태도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는데, 유행에 편승한 양육태도가 아이들의 우울을 불러왔다니. 극단적인 일반화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론으로 시작한 이야기를 세대론으로 받아쳐본다면... 과연 80년대생 부모들은 유독 과잉보호적인 세대일까. 80년대생 부모들은 수용적 육아방식이라는 유행에 너나없이 편승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와 남편은 빼도 박도 못하는 80년대생 부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는...
과잉보호적 세대이기보다는
오히려 우리부터가 과잉 불안에 시달리는 세대가 아닐까.

80년대생은 (범) 포스트 IMF 세대이다. 사회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이고 개인의 삶이 성장하는 사회에 기대어 흘러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더 이상 가질 수 없음을, 우리는 일찍이 학창 시절에 이미 깨달았다. 대입 줄 세우기가 끝나자마자 취업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하여 이른바 '스펙'을 쌓아야 했고, 어렵게 쌓아 올린 그놈의 스펙은 막상 써먹을 때가 되니 국제적 금융위기 앞에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경험을 해야 했다. 어떻게 어떻게 취업의 관문을 지난다 하더라도 그 이후로도 결혼, 출산, 육아 모두 내 능력에 달렸고, 오롯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과업이었다.


자신들의 부모세대보다 (대체로)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라왔지만, 종래에는 각자도생을 강요받은 세대. 아들들은 세상이 바뀌었다면서도 너만은 아직 집안의 기둥이자 든든한 가장이 되어주길 기대받았고, 딸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른바 김지영이 되기를 강요받으며 혐오 섞인 조롱까지 감내해야 했던 세대.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알고 있다.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센척하며 꽉 움켜쥔 각자의 허술한 갑옷 한 꺼풀이 벗겨지고 나면 나 따위는 금방 낙오되어 저 뒤에 남겨지고 말 것이라는 것을.


그런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키운다. 게다가 사회는 갈수록 더 치열한 경쟁구도가 가속화되고, 교육제도는 자율성의 탈을 썼지만 실은 기형적 획일화의 첨단을 걷는 것만 같다. 초등학교 때 영어 완성, 중학교 때 수학 완성, 고등학교 때에는 내신과 학생부... 한 번의 도태는 곧장 실패로 귀결된다. 나에 대해, 너에 대해, 아이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과연 우리가 불안에 시달리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양육태도든, 내재된 불안이든, 설령 부모세대의 무엇인가가 자녀에게 불안의 씨앗을 심어 틔웠다고 한들, 이것이 정녕 '80년대생 부모'의 탓인가.


사회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은 없다. 한두 번 넘어져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 남과 달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 사회적 돌봄 확충을 통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형성... 세대론에 편승한 양육태도 비판보다는 이런 근본적 의제에 대한 논의가 더 중요한 문제 아닐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토론이 더 시급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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