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공부를 대하는 워킹맘의 사정 (1)
임신 초기엔 입덧만 지나가면 될 것 같고, 막달에는 애만 낳으면 살 것 같고, 아이가 누워있을 때엔 걷기만 하면 좋겠고, 그다음엔 제발 말이라도 통했으면 소원이 없겠고... 언제쯤 내 손이 덜 가나 싶어도 육아에는 끝이 없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또 다른 고민들이 줄을 잇는다. 그중 하나가 공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유치원 때에 비해 갑자기 하교시간이 빨라져 보육 공백이 생기기도 했고, 언어는 어려서 배워야 한다던데 하는 마음에 영어학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이는 금방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영어학원에 적응해 갔다. 가끔 종알종알 영어학원에서 배운 것은 집에 와서 자랑하는 모습이 퍽도 기특했다.
그 뒤로는 솔직히 아이가 학원에서 진도를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잘 따라가고 있는지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당장 시험 따위를 앞둔 것도 아니고, 이제 처음 영어를 배우고 있는 것인데 일상생활만으로 벅찬 맞벌이 부부가 아이의 영어학원 학습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글쎄... 내 기준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일 뿐이다. 더 부지런히 시간을 쪼개어 아이의 공부를 섬세하게 챙겨주는 부모도 분명 세상에 존재한다.)
그렇게 일 년 정도 지났을까. 어느 날 영어학원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별이 영어학원 선생님이에요."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몇 주 전부터 별이가 파닉스를 끝내고 상위 반으로 넘어갔어요. 그래서 그날 배운 영어 단어 다섯 개씩 철자를 외워오는 숙제가 나가고 있는데, 별이가 숙제를 전혀 해오지 않아서요."
"어머, 숙제가 있었나요?"
"네, 어머니. 단어를 외워오고 받아쓰기를 하고 있는데, 별이가 계속 0점을 받고 있어요."
"아... 숙제가 있고, 받아쓰기 시험도 보는군요. 죄송해요. 제가 몰랐네요."
당황한 나는 뚝딱거리며, 선생님께 사과부터 했다. 애가 숙제를 안 해간 것인데 내가 왜 죄송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선생님은 이어 말했다.
"집에서 별이가 단어를 외워올 수 있도록 챙겨주시겠어요?"
"아... 영어 단어 외우는걸요..."
무척이나 심란했다. 퇴근하고 씻겨서 재우기도 바쁜데, 숙제를 어떻게 봐줘? 아니, 고작 여덟 살짜리가 영어단어를 굳이 외워야 하나?
"굉장히 쉬운 단어 다섯 개씩이거든요. 부담되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 선생님, 그냥 0점 받게 두시면 안 될까요? 아니면, 별이를 다시 숙제가 없는 하급 반으로 옮기는 것은 어떨까요? 제가 사실 퇴근하면 숙제를 봐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없고, 아직 어린데 굳이 철자까지 외워야 하나 싶어요."
세상에... 지금 생각해 보면 낯 뜨겁지만, 그때 난 정말 저렇게 말했다. 선생님도 당황했는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어머니, 제가 좀 조심스럽긴 하지만 말씀드릴게요. 주어진 공부를 안 하거나 또래보다 뒤떨어지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어요. 스스로 숙제를 해갈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 가정에서 신경을 좀 써주시는 게 어떨까요."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녁에 별이랑 이야기 나눠볼게요."
결국 아이의 영어단어 외우기는 할머니의 숙제가 되었었다. 우리 엄마는 그날부터 손녀의 영어단어 외우기를 봐주기 시작하며, 졸지에 학교 졸업한지 근 40년 만에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그 이후 엄마의 영어 실력은 쑥쑥 늘어나서 엄마는 이제 해외여행을 가면 먼저 나서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
걷기도, 말하기도 다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처럼 아이 숙제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는 이제 자연스럽게 학교든 학원이든 스스로 숙제를 해가고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숙제를 봐주지 않는다. 가끔 아이의 어깨너머로 흘낏 훔쳐보면 그 완성도가 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그마저도 아이의 몫이지. apple, bear를 외울 때에도 챙겨줄 여력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거들어봐야 잔소리일 뿐이라 생각하고 그냥 눈을 질끈 감는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