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밥 다 데웠어?

역시 데워 먹는 밥이 제일 맛있지.

by 정벼리

직장동료 Y는 세돌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남편이다. Y의 아내는 한 번씩 해외출장을 갈 일이 생기는데, 그때마다 본가의 어머니가 살림과 아이 케어를 도와주셨다. 지난주에도 아내가 출장을 떠났는데, 하필 어머니가 지독한 열감기에 걸리셔서 몸져누우셨다고 한다. Y는 깊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청소고 빨래고 원래 제 일이라 괜찮은데, 나흘 동안 아이 밥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걱정이에요."


다른 집안일은 거뜬히 해내는 Y이건만, 요리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나 보다. Y의 걱정에 사무실의 워킹맘과 워킹대디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용쓰지 말고 그냥 사 먹으라고 말이다. 동네 반찬가게에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니 돈가스, 소시지 볶음부터 건강한 나물까지 갓 만든 반찬만 수십 가지인데, 굳이 잘 못하는 요리를 시도하며 땀을 뻘뻘 흘릴 이유가 없고, 밥도 며칠정도 즉석밥 데워 먹는다고 큰 일 안 난다고 말이다.


내 예상이지만 Y도 아마 속으로는 이미 저녁밥은 사 먹일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냥 우는 소리 한 번 하고, 다들 비슷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괜한 죄책감을 털고 싶었겠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건 아무 상관없어도, 아이에게 며칠 연속으로 바깥음식을 먹인다는 것은 어쩐지 부모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이 남으니까.




며칠이 지나고, 6시가 지났는데도 Y가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아내가 출장에서 돌아왔나 보다. 야근이 예정된 사람들끼리 우르르, 사무실 앞 백반집으로 향했다. 된장찌개나 돼지고기 두루치기로 간단히 한 끼 챙기기 편한 식당이라 자주 찾는 곳이다. 밑반찬과 공깃밥이 깔렸을 때 넌지시 물었다.


"아내 없는 동안 아이 저녁밥은 잘 챙겨줬어요?"


Y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파트 상가 반찬가게에서 매일 퇴근길에 아이더러 먹고 싶은 반찬을 고르도록 했거든요. 세상에, 맨날 밥을 잘 안 먹어서 속을 썩이는 애였는데... 우리 애가 이렇게 밥을 잘 먹을 수 있는 줄 처음 알았다니까요."
"하하하, 엄마가 해주던 밥보다 간이 세니까 맛있었나 보네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밥 먹이기 쉬워서 저녁이 수월했겠어요."
"말도 마세요. 평소에는 밥 다 차렸다고 서너 번을 불러도 식탁으로 안 오고 밍기적거리던 애가, 먼저 식탁에 앉아서 숟가락 들고 밥 다 데웠냐고 외치더라고요."
"쪼끄만 게 밥 다 됐냐고 묻기까지 해요?"
"아니요! 밥 다 되었냐가 아니라, 밥 다 데웠냐고요. 전자레인지에 다 돌렸냐고. 아빠, 밥 다 데웠어?"


우리는 어린아이의 억양을 그대로 따라 하는 Y의 우스꽝스러운 외침에 다 같이 깔깔 웃었다.




Y네 꼬맹이가 맛을 안다. 나도 직접 지은 밥보다 햇X이나 오X기밥이 맛있고, 내가 만든 반찬보다 엄마가 꽁꽁 얼려준 반찬 데워 먹을 때가 훨씬 좋더라.


일하는 엄마 아빠가 퇴근 후 밥을 차린다는 건, 꽉 찬 사랑 없이는 수행(?) 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미 하루치 에너지를 회사에 다 쓰고 집에 돌아오면, 냉장고 앞에 멀뚱히 서 있는 것조차 버겁다. 아마도 혼자 살거나 둘이 살았다면 한 달에 20일씩은 밖에서 사 먹거나 배달음식으로 때웠을 것 같다. 그나마 아이 밥을 챙겨줘야 한다는 의무감에 전자레인지에 즉석밥이라도 돌리고, 반찬가게에서 영양균형을 맞춰 사 오기라도 하게 된다. 그래도 데운 밥과 사온 반찬이라고 식탁에 둘러앉은 마음까지 가벼운 건 아니다. 퇴근길에 반찬가게에서 아이 손을 잡고 이것저것 고르던 Y의 마음, 전자레인지 앞에서 밥 다 데웠는지 묻던 아이의 얼굴에 담겼을 행복이 그 증거다.


나 역시 평일에는 꽤나 자주 데운 밥으로 저녁을 차려내는 워킹맘으로서, 부디 우리 아이에게 데운 밥이나마 엄마의 사랑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나중에 우리 아이가 한참 큰 뒤에, 어릴 때 엄마아빠 퇴근하고 같이 저녁 먹는 시간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회상해 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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