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어요

걱정은 지나가고 웃음만 남는 해프닝

by 정벼리

월요일 오전에 중요한 회의가 잡혀 있었다. 팀 간 협업이 필요한지라 지난주부터 여러 사람이 시간을 맞추고, 회의자료와 각 포지션에 대한 요청사항을 두루두루 준비해 왔다. 나도 오늘은 최종점검을 위해 새벽부터 출근하여 자료를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 진동이 드르륵 울렸다. 오늘 회의의 주 업무 담당자인 A였다.


"여보세요."
"팀장님, 저 A인데요.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출근을 못하겠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A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머나, 어디가 아픈데? 응급실 가봐야지요!"
"지금 데리고 가보려고요. 일어나면서부터 칭얼대더니, 조금 전부터는 배를 움켜쥐고 바닥을 굴러요."


떨리는 목소리 끝에 울음소리가 묻어 있었다. 어서 병원부터 데리고 가보라고, 회의는 다시 일정을 잡도록 조정하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지, 많이 아픈 것은 아니어야 할 텐데, 걱정이 되었다. 부랴부랴 회의 참석자들을 상대로 메신저를 보내 불가피한 사정으로 회의 시간을 연기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전 10시가 조금 지나자, A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A는 연신 온 사방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걸어왔다. 깜짝 놀라 어떻게 출근했냐고 물었다. A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응급실에서 아이라 그런지 대기 없이 바로 진료를 봐주더라고요."
"그래도 아픈 아이를 두고 어떻게 출근을 했어요."
"아니, 그게... 피검사도 하고 엑스레이도 찍었는데, 그냥 변비로 인한 복부팽만이래요. 아무 문제없대요."


약 받아 먹이고 곧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왔다며, 어쩔 줄 모른 채 고개를 푹 숙이는 A를 향해 너털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큰일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고.




부모는 아이가 아프다면 머리가 하얗게 변하며 눈에 뵈는 게 없어진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에는 별일 아닌 것에도 하늘이 무너지곤 한다. 나도 초보엄마 시절, 그런 경험이 있다. 나는 친구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아이를 낳아 키웠다. 그래서 육아에 대한 간접 경험이 전무했다. 말 그대로 책으로 육아를 배웠다. 늘 곁에 두고 펼쳐보던 책은 노란 표지의 <임신출산육아 대백과>. 첫 아이를 키우는 집에서는 누구나 한 권씩 가지고 있는, 엄청 두꺼운 바로 그 책이다.


책에는 아이에게 스케줄에 맞춰 모유나 분유를 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며, 텀이 길어지면 탈수가 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네 시간 이상 소변을 보지 않으면 탈수 증상을 의심해 보라는 조언이 쓰여 있었다.


그때 우리 아이는 한참 보채고 잘 먹지 않던 시기였다. 지나고 보니 백일 무렵의 급성장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날따라 유난히 안 먹었다. 먹은 게 없으니 기저귀도 젖지 않았고, 나의 불안은 점점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육아수첩을 펼쳐 마지막으로 기저귀를 갈았던 시간을 확인했다. 마지막 시점으로부터 4시간이 지나는 순간, 나는 이성을 잃은 채 아이를 들쳐 안고 가까운 소아과로 전력질주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접수처의 간호사 선생님께 울면서 소리쳤다.


"저희 애가 탈수 증상이 온 것 같아요!"


대기실에는 서너 명의 대기인원이 있었지만, 병원에서는 응급 상황일 수 있다며 최우선으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해주셨다. 분유도 잘 안 먹고, 기저귀가 4시간 이상 젖지 않는다고 우는 나로부터 의사 선생님은 차분히 아이를 건네받아 진료 베드에 눕혔다. 의사 선생님께서 아이를 어르며 기저귀를 풀어본 순간, 어머나, 기저귀가 푹 젖어있었다.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괜찮네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흐르던 눈물은 쏙 들어가고,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죄송하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가 잘 안 먹는 날도 있다며, 하루에 최소 섭취해야 할 수유량은 몸무게 1kg당 100ml 정도이니 그 이상만 먹었다면 과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진료실을 나와서도 얼굴의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과 대기실의 다른 엄마들에게도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감사하게도 다들 웃으며 그럴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럼에도 너무 부끄러워 도망치듯 병원을 나섰던 기억이 난다.




A가 출근했을 때 사무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해프닝으로 업무 스케줄이 모두 변경되었지만, 누구 하나 적어도 겉으로는 불평하지 않았다. (뭐 속마음까지야 바랄 수 있나.) 다들 별일 아니라 다행이다, 덕분에 여유롭게 월요일 아침을 시작했다, 월요병이라 사실은 회의하기 싫더라, 웃음을 나누어 주었다.


초보 부모의 혼비백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 앞에서 얼마쯤은 바보가 되어버리는 거. 사실 되게 흔한 일이다. 꼭 육아가 아니더라도 그런 경험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이다. 게다가 걱정은 지나가고, 웃음만 남는 해프닝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연휴 끝에 남은 작은 우울을 걷어 차주는 인류애 충전의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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