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과 사교육, 정책과 현실의 엇박자

아이 공부를 대하는 워킹맘의 사정 (3)

by 정벼리

(이 글은 이전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선행학습이 꼭 필요한가요? / 아이 공부를 대하는 워킹맘의 사정 (2)



대화가 길어질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 기준에는 정말 기괴한 일 같았다. 공통수학과 수 1, 수 2를 고등학교 과정에 넣어둔 것은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그 정도는 자라야 수월하게 이해하고 배울 수 있다는 판단이 있어서일 텐데. 다시 말하면, 선행학습을 하는 아이들은 열일곱열여덟이 되어서 배우면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쉽게 배울 수 있는 내용을, 굳이 열다섯열여섯에 어렵고 힘들게 배우고 있는 것이다. 난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동료는 덧붙였다.


"그리고 요즘 현역으로 대학 가려면, 특히 상위권일수록, 한 번만 시험 삐끗하면 내신 등급이 쭉쭉 떨어져요. 중간이든 기말이든 한 번만 망치면 바로 학교장 추천이고, 생기부고 다 나락이라니까요."
"그래도 좀 이상해요. 그냥 교육과정 맞춰서 스스로 공부하는 게 틀렸다니 이건 뭔가 이상하잖아요."
"틀렸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사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고등학교 공교육 과정 속에서 수능 준비 하려다가는 내신을 망칠 수밖에 없고, 내신을 망치면 수시로 대학을 갈 수 없다는 거죠. 정시는 재수생들과 경쟁해야 하니 더 어려운 것이고요. 그러니 너 나 할 것 없이 학원을 보내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거예요."




그날 이후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에서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화두로 한 여러 가지 영상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과연 내가 생각한 것과 현실이 좀 다르기는 하더라. 심지어 어떤 영상에서는 중학교 때까지 스스로 공부해서 상위권을 유지했던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 사교육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는데, 다닐만한 학원을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대부분의 학원이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선행이 되어있지 않은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서라고 했다.


정말 이상한 세상이다. 대입 과정을 설계한 정책가들과 교육학자들이 고등학교 내신을 강화하도록 한 것이 선행학습을 유행(?)시키려던 의도는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수행평가의 비중을 높인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당시로서도 과열화되었다 평가되던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엉뚱하게도 더 가속화된 선행학습과 사교육 시장 열풍을 가져온 것 같다. 정책과 현실이 정확하게 엇박자를 내고 있다.




거창한 사회문제는 접어두고, 당장 아이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입이 공부의 전부가 아니라는 철학적인 이야기까지는 건드릴 필요도 없다. 우리 아이가 어느 정도로 공부머리가 있는지, 어느 정도 학업성취를 이루고 있는지, 상위권 대입 준비를 위한 전쟁통에 발을 들일 가치가 있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때에는 학교에 시험이 없으니까. 상대평가를 경험할 기회가 없다. 온통 물음표뿐인 세상에 던져진 것 같다.


망설이다가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SOS를 청했다. 주저주저한 끝에, 실은 학원에 보내 선행학습을 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아이의 수준 확인부터 향후 공부계획을 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지 물어봤다.


"현행으로 혼자라니 어려운 일이긴 한데… 막연하게 이상적인 생각만 하지는 말고, 우선 꾸준히 대입설명회나 교육과정 설명회 같은 데를 찾아다니며 정보부터 모아 봐. 그리고 아이 성향과 학습능력 같은 것을 종합적으로 살펴서 판단해야지."
"내가 꾸준히 설명회 찾아다닐 시간이 어디 있니. 출퇴근하고, 애 먹이고 입혀서 학교 보내기도 빠듯하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입시컨설팅 학원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 학원 컨설팅 예약 잡아줄까?"
"아니 아니, 급발진하지 말고. 우리 애 아직 초등학생이야. “
“초등학생부터 슬슬 대입 준비하는 게 유난스러운 건 아니야, 요새는.”
“그래도… 우선 아이 학습능력이나 학업성취도는 뭘로 판단할 수 있을까? 학교에서 학력평가 본 적은 있는데, 1~3등급으로만 평가해서 구체적인 성취도는 알기 어렵더라고."
"맞아. 중학교까진 전국단위 평가가 있는 학원이나 경시대회에 나가서 시험을 봐야 실제 실력을 알 수 있을 거야. 우리 학원 입학시험이 다음 달에 있는데, 신청해 볼래?"


어휴, 결국 돌고 돌아 학원 밖에 답이 없다는 거야? 일단 의논해 보겠다며, 적극적인 영업(?)을 펼쳐오는 친구를 진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아직 답도 알지 못하고,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그저 생각만 답보 중이다. 유치한 슬라임 장난 유튜브에 빠져 깔깔깔깔 웃어젖히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 저렇게 어린데, 하고 여유만 가져보고 있다. 차라리 누가 이게 답이다, 하고 딱딱 정해주면 좋겠다. 아이고, 머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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