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동천재를 낳았다!

엄마 눈에 비친 너는 그저 짝짝짝.

by 정벼리

며칠 전 저녁을 먹다가 아이가 말했다.


"있잖아, 내일 학교에서 팝스한대."
"뭐? 팝송?"
"아니, 팝스!"
"그게 뭐야?"
"달리기도 하고, 멀리뛰기도 하고, 체력을 보는 거래."
"아, 체력장?"
"아니, 팝스라고!"

요새 학교에서는 '체력장' 대신 ‘팝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도대체 팝스가 무슨 말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우리말로는 신체능력검사, 영어로는 Physical Activity Promotion System를 줄여서 팝스(PAPS)라고 통칭한단다. 검사 종목은 셔틀런, 유연성검사, 악력검사, 멀리뛰기, BMI 검사라고 한다. 셔틀런은 또 뭔가 싶어 다시 찾아보니, 15m를 최대 100회 이상 반복해서 달리는 방식의 왕복 오래 달리기라고 한다.


(아니, 알기 쉬운 우리말을 두고 왜 자꾸 영어를 써서 한번 더 찾아보게 만드는 거지? 하지만 학교행정에서의 우리말 쓰기에 대한 나의 불만사항은 오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니 제쳐두기로 한다.)


왕복 오래 달리기 라니.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우리 아이는 날 닮아 운동은 뭐든 영 젬병인데. 게다가 오래 달리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오래 달리기라고 하면 잊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이런 기억에도 추억이라는 애틋한 단어를 붙여줘야 하나 싶지만.) 나는 정말 달리기를 못했다. 매년 꼴찌를 도맡는 건 당연한 거고, 꼴찌에도 급이 있다면 나는 단연 독보적 탑급이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학교에서 오래 달리기를 할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땅, 소리에 출발하자마자 나는 금방 최하위권으로 밀려났다. 그리고 운동장을 두어 바퀴쯤 돌았을 때 다른 친구들이 하나씩 하나씩 꼴찌인 나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운동장 한 바퀴 이상의 격차가 벌어진 것이다. 1등이 도착지점에 들어갈 때가 되자, 함께 달리던 친구들 중 과반수 이상이 나를 추월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고 도착점을 지나치는 순간, 기록을 재던 선생님이 크게 외쳤다.


"정벼리, 6분 37초!"
"아니에요, 저 아직 한 바퀴 남았다고요!"


울부짖으며 계속 달리는 내 두 볼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당연히 숨이 차올라서만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고 싶었다. 아직도 그때의 창피함이 잊히지가 않는다.




아이의 학교에서 팝스가 있던 날 오후, 하교하는 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나 다리가 너무너무 아파. 후들후들 떨리는 것 같아!"
"달리기 해서 그럴 거야. 셔틀런은 어떻게 할만했어?"
"아니, 나 정말 못했어. 최악이야."
"별이가 반에서 꼴찌야?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엄마는 왜 내가 꼴찌라고 생각해?"
"어? 꼴찌 아니야?"
"나 참, 황당하네! 내 뒤로 '두 명'이나 더 있거든?"
"진짜? 진짜로 별이 뒤로 두 명이나 있어? 대박! 우리 딸 운동천재잖아!"
"아니, 그렇다고 천재는 아니지."
"아닌데! 엄마는 학교 다닐 때 맨날 꼴찌였다니까. 엄마 딸인데 그 정도면, 이야, 별아! 너는 정말 달리기 천재 같아!"
"아니라고. 100번도 넘게 뛰어야 만점인데 나는 47번까지밖에 못 뛰었어. 그것도 숨이 터지는 줄 알았어."
"뭐? 15미터를 47번이나 달렸어? 어머 어머, 별아 너 진짜 운동에 소질 있다!"
"아휴, 엄마랑 진짜 대화가 안 돼!"


아이는 한숨을 폭폭 내쉬며 됐다고 전화를 끊었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독보적 꼴찌 엄마가 낳은 딸이 저 정도로 잘 달렸다면, 완전 대단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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