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그뿐이라는 것을 기억해 줘.
직장 내 근무평가 기준이 변경되어 업무 관련 자격시험에 응시해야 하게 되었다는 글을 썼었다. 이 나이 먹고 무슨 시험인지, 하기 싫어 죽겠지만 꾹 참고 공부를 하다 딸아이로부터 비웃음과 동정을 함께 샀었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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꾹 참고 공부한 끝에 철썩 합격하여 노력 끝에 목표를 달성하는 모범적인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면 아름다운 스토리의 완성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똑 떨어져 버렸다. 사실 시험 보러 가면서도 이미 결과를 예감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마지못해 책을 펼쳐보았을 뿐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기 싫어서 그렇게 몸을 배배 꼬며 대충 공부했는데 그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가족들에게 이야기할 때 입이 잘 안 떨어지긴 했다. 약 한 달간 집안일을 모조리 도맡아준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아이에게도 모범이 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앞섰다. 아무리 말 꺼내기를 미뤄봤자 결과가 바뀔 것은 없고, 가족들에게 털어놓지 않을 도리도 없다. 결과가 발표되었던 날 저녁, 나는 최대한 여상한 말투로 툭 이야기했다.
"나 저번에 시험 본 거, 오늘 발표 났는데 떨어졌어."
"으악, 그럼 다음에 다시 봐야 하는 거야?"
"응. 다음엔 제대로 좀 공부해야지, 대충 해서는 안 되네. 당신이 많이 도와줬는데 미안해."
"아니야. 다음엔 더 각 잡고 해 봐."
남편은 살갑게 위로의 말을 건네왔는데, 딸아이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아이에게 왜 그러는지 묻자, 의외의 말이 나왔다.
"엄마, 괜찮아?"
"그럼, 괜찮지 않을 건 또 뭐야."
"엄마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건 생각도 못했어..."
이런. 아직까지는 아이에게 엄마아빠란 뭐든 척척 해낼 수 있는 슈퍼히어로 같은 존재였나 보다. 엄마아빠도 무언가에 실패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남편이 아이에게 누구나 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고 다시 공부하면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엄마아빠에 대한 환상이 깨져버린 여파가 여간 크지 않은 듯했다. 나는 웃으면서 털어놓았다.
"별이야, 솔직히 엄마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어.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결과를 인정할 수 있어. 누구든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쉬운거야."
"그래도... 엄마는 속상하지 않아?"
"물론 속상하지.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까, 이번 일을 교훈 삼아 다음엔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거지."
"응. 다음에는 잘 볼 수 있을 거야."
"맞아. 엄마가 열심히 노력하면, 다음에는 붙을 수 있을 거야."
아직은 아이에게 엄마가 그토록 대단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이제는 아이의 마음속에서 엄마 역시 실패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 되었겠구나 싶어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하여 아이가 더 중요한 교훈이 전해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와 누구든 때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사실, 그리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더 열심히 달리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가 오늘의 교훈을 꼭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만하면, 나의 실패기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본다. 아이 참, 내년에 또 공부를 해야 한다니 이걸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