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엄마도 하기 싫어.
회사에서 근무평가 기준을 개편했다. 업무와 관련된 특정 자격 취득자 수를 부서별로 취합해서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했다. 부서장들은 직원들에게 자격 취득 시험에 응시할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격시험 응시 신청을 했는데, 문제는 이 시험이 상당히 많은 공부량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한 달 전쯤, 나는 인터넷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구매했다. 택배박스에서 벽돌처럼 두꺼운 책을 꺼내는 나를 보면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무슨 책이 그렇게 두꺼워?"
"엄마가 지난번에 회사 일 때문에 엄마도 시험 봐야 한다고 말했잖아. 시험공부하려고 샀어."
"우와, 이렇게 두꺼운 책을 전부 봐야 해?"
"그러게... 그렇다고 하네."
한숨인 듯 아닌 듯 크게 숨을 내쉬며 시무룩해진 나와 달리 아이는 어쩐지 무척 신이 난 것 같았다. 평소에 엄마 아빠로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듣는 것은 저뿐이었는데, 제가 푸는 문제집보다도 훨씬 두꺼운 책을 가지고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니 어쩐지 고소해하는 것 같았다.
이참에 부모로서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매번 입으로만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둥, 숙제부터 하고 놀라는 둥 공부하란 이야기를 읊어댔으니, 한 번쯤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었다. 비장한 나의 계획을 살짝 엿들은 남편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보내왔다. 뿐만 아니라 시험 날까지 아이의 아침밥도 남편이 새벽 출근 전 차려놓고 가겠다며, 든든한(?) 뒷바라지(??)를 약속했다.
나는 저녁에 식탁에 자리 잡고 앉아, 책을 펴고 형광 색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런 내 모습을 재미있는 광경이라도 보듯 쳐다보곤 했다. 주말에는 같이 보드게임을 하자고 다가오다가도 중얼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아... 엄마는 공부해야 하지."
비슷한 풍경이 몇 주째 반복되었다. 날도 덥고, 나도 지쳐갔다. 평소 아직 젊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건만, 연일 시험공부를 하려니, 이 나이에 무슨 시험, 하는 곡소리가 절로 났다. 아이에게 모범을 보이겠다는 다짐도 모두 잊은 어느 오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어휴! 하기 싫어 죽겠네!"
그 순간 소파에 앉아 휴대폰에 코를 박고 있던 아이가 큰 소리로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푸하하, 엄마도 공부하기 싫어?"
"응... 사실은 엄마도 공부하기 싫지. 하지만 시험 보기로 마음먹었으니 꾹 참고 공부하는 거지."
"그럼 엄마, 나랑 같이 공부해요. 나도 영어숙제 있어. 같이 하면 조금 힘이 날 거예요."
선심 쓰듯 함께 공부해 준다는 아이를 보고, 웃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기꺼이 공부에 매진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지만, 귀찮고 하기 싫어도 꾹 참고 계속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나름 의미는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