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재능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렇지만 박수가 절로 나오는 너의 연주

by 정벼리

요즘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우리 아이도 악기를 몇 개 다룰 줄 안다.


유치원 다닐 때 칼림바로 간단한 동요를 배워 왔는데, 아직도 가끔 꺼내서 뚱땅뚱땅 튕기며 논다. 조율한 지 오래되어 음이 조금씩 어긋난 칼림바는 꽤 기묘한 소리를 낸다. 학교에서는 리코더를 배우고 있다. 본인의 연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하다. 반에서 리코더를 아주 잘 부는 한 두 명 안에 든다고 자랑하며, 어쩌다 주말에 리코더를 가져와 집에서 삑삑 부는데 상당히 시끄럽다. 이쯤 되면 벌써 예상되듯, 본인의 자부심과는 상관없이 객관적으로 음악적 재능은 영 없다.


초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2년 정도는 바이올린을 배웠다. 아이가 원해서 가르쳤는데, 아웃풋에 비해 레슨비가 너무 비싸서 이사 오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 학원으로 슬쩍 바꿔 보내고 있다. 어차피 대단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얕게라도 두루두루 배워보고 제 손으로 다뤄본 영역이 많을수록 나중에 문화생활 향유자로서 더 넓고 깊게 취향을 즐길 수 있겠지 하며 보내고 있다. 다행히 아이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재미있는 놀이활동을 하는 기분으로 잘 다닌다.




바이올린을 배울 때에도 악기를 다루는 기술은 영 꽝이었다. 제대로 조율을 해놔도 아이가 운지를 잘 못해서, 무엇을 연주하든 묘하게 반 음 정도 피치가 떨어졌다. 아무리 명랑한 장조를 연주해도 어딘가 슬픈 음악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레슨을 해주던 선생님은 아이를 기묘한 방식으로 칭찬했다.


"어머니, 별이가 참 똑똑해요. 악보 읽는 법을 가르치면 잘 배우는 게, 나중에 공부를 잘할 것 같아요."


내가 듣기에도, 빈말로라도 바이올린에 소질이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소리였으니 이해한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동안 웃지 못할 일화가 하나 더 있는데,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아이가 저녁 식사 도중 폭탄선언을 했다.


"학교에서 전체 장기자랑 대회가 열린대. 강당에서 큰 무대에 올라가 전교생 앞에서 하는 거래. 나도 대회에 나간다고 신청했어."
"오잉! 별이는 뭘로 장기자랑을 나가는데?"
"당연히 바이올린 연주한다고 했지!"


당황스러운 정적이 잠시간 식탁을 스쳤다. 이제 겨우 짧은 동요나 겨우 연주하는 실력이면서, 전교생 앞에서 무대에 나가 바이올린 독주를 한다고? 지금이라도 뜯어말리고 취소하라고 해야 하나, 전교생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상처를 받으면 어떡하나, 찰나의 순간에 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꾹 참았다. 실패도 아이의 몫이고, 스스로 경험하겠다 나선 일에 찬물을 끼얹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대신 다음 날 곧장 레슨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회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죽어라 한 곡만 연습하기로 계획을 짰다. 선생님은 비장한 말투로 고심 끝에 아이에게 최적의 곡을 골랐다며, 연습을 시작할 수 있도록 악보를 하나 보내왔다. 누구나 아는 노래였는데,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로 시작하는 바로 그 노래였다.


선생님의 한 달간의 집중 레슨(?) 끝에 아이는 연주곡을 완성했다. 피치가 묘하게 떨어지는 아이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정말 구슬프기 짝이 없는 신데렐라 노래가 되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장기자랑 대회에서 훌륭하게 공연을 마쳤다. 담임 선생님의 전언에 의하면, 신데렐라의 심정을 서글프게(???) 잘 표현한 연주였다며 큰 박수를 받았다고 했다. (코로나 시기라 부모 참관이 불가능했다.)




요즘에 아이는 피아노를 뚱땅거리면서 자아도취 연주 삼매경에 빠져있는 때가 많다. 피아노는 묘하게 반 음씩 내려칠 재간이 없지만, 바이올린과 달리 모든 곡이 어찌나 그렇게 씩씩하고 우렁찬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남편과 나는 거실에서 서로 마주 보고 킥킥대며 이야기한다. 음악에는 재능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하마터면 큰돈 들 뻔했다고. 그렇지만 아이가 방에서 뛰쳐나와 내 연주 어땠어, 물어보면 정색을 하고 손바닥을 마주친다.


너무 훌륭하다고, 이렇게 박수가 절로 나오는 연주는 엄마 인생에 처음이라고. 브라바!

이전 17화엄마도 실패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