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싫은 행동을 해요.
아침마다 사진 앱이 추억의 사진을 추천해 준다. 한 번씩 열어서 보면 그렇게 재밌다. 맞아, 이런 날도 있었지,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오늘의 추천은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의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이는 목에 건 가죽끈 끝에 달린 동그란 펜던트를 손에 쥐고 자랑하듯 쭉 내밀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 이것은 '용기의 목걸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까지는 별다른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치원에 간 뒤로 한 번씩 친구에게 떠밀려 넘어져 얼굴이나 팔을 다쳐서 오고는 했다. 자유놀이 시간에 선생님이 보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어린이집에서의 교사 1인당 아동 비율이 갑자기 두배로 늘어나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당시 우리 지역 기준으로는 만 2세 반 - 1:7 / 만 3세 반 - 1:15)
비슷한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이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아이에게 너를 밀친 애가 누구인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물어보자 새로운 이야기들이 나타났다. 처음에 아이를 떠밀었던 애는 놀이시간에 놀잇감이 겹치는 일이 많은 E라는 아이였는데, E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세게 떠밀기도 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우리 아이 놀잇감을 뺏어도 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친구들 중 한 둘은 정말로 아이를 밀고 장난감을 뺏기도 했다고.
머리의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솔직한 심정은 당장 E라는 아이를 찾아 바닥에 패대기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묻기 전에는 이런 이야기를 안 했는지 괜히 내 아이에게도 화가 났다. 이성을 찾고 침착하자는 속엣말과 함께 심호흡을 했다. 아이를 끌어안으며 얼마나 속상했냐고, 엄마가 내일 유치원에 연락해서 더 이상 누가 괴롭히지 못하도록 방법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밤새 잠을 설쳤다. 유치원에서 나를 과민반응하는 부모로 치부해 버리면 어쩌자, 그럼 유치원을 옮겨야 하나, 집 근처의 다른 평판 좋은 유치원들은 빈자리가 없을 텐데, 잘 해결되지 못할 경우 아이가 부모님이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이 일이 트라우마로 남는 것은 아닐까, 별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유치원은 상황을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 주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있는지 면밀히 살피고, 매일 아이의 생활을 자세히 알려주겠다고 약속도 했다. 더는 아이가 다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며칠 뒤, 선생님은 아이에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연습을 시킬 것을 권해왔다. 아이가 싫은 상황에서 안 돼,라는 말을 잘 못한다는 말과 함께.
그날 저녁 아이에게 친구들이 싫은 행동을 할 때 왜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는지 물었다. 아이는 친구들이 또 밀치거나 미움받을까 봐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용기가 생길 수 있을지 묻자, 엄마가 용기를 좀 빌려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 속 '용기의 목걸이'를 만들었다.
아이와 함께 천사점토에 물감을 섞어 조물조물 빚어 둥그런 펜던트를 만들고, 용기의 표상으로 소용돌이 무늬를 새겼다. 잘 말려 바니쉬를 발라 굳혔다. 아이가 직접 고른 가죽끈에 펜던트를 매달았고, 우리는 둘이서 마주 앉아 엄숙한 의식을 치렀다.
"용기야 들어가라, 히야아앗!! 자, 이제 이 펜던트 안에는 용기가 잔뜩 담겨있어. 이걸 걸면 별이가 싫을 때 용감하게 싫어, 하지 마,라고 말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아이 목에 용기의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친구가 괴롭히면 어떻게 할 건지 연습해 보자."
"싫어!! 하지 마!! 괴롭히지 마!!!"
아이는 씩씩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한동안 매일 아침 용기의 목걸이를 걸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 한동안이 지난 어느 날, 아이는 이제 엄마에게 용기를 돌려줘도 괜찮을 것 같다며 목걸이를 벗어 나에게 건넸다.
다시 오늘 아침, 나는 휴대전화를 들이대며 아이에게 외쳤다.
"이 사진 기억나? 이 목걸이 뭔지 알겠어?"
"응? 흠... 이거 엄마랑 같이 만든 거지? 같이 만들었던 거는 기억나는데, 글쎄... 이게 뭐야?"
"용기의 목걸이잖아! 네가 용기가 부족하다고 해서, 이 목걸이에 엄마의 용기를 담아서 너에게 빌려줬었어. 기억 안 나?"
아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랬어? 어린 별이는 진짜 순진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