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는 별이 마음대로 해, 엄마는 엄마 길 갈 거야. (2)
* 이 글은 앞 이야기와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오후 세 시에 아이한테 자꾸 전화가 온다 / 별이는 별이 마음대로 해, 엄마는 엄마 길 갈 거야. (1)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아직 오늘 풀어야 할 수학문제집을 다 풀지 못하고 있었다. 옆에 다가가 살펴보니, 컴퓨터 게임은 15분만 하기로 했지만 약속한 시간보다 한참 더 오래 놀다가 뒤늦게 책상 앞에 앉은 것이 분명했다. 엄마가 집에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해보려 헐레벌떡 문제집을 푼 흔적이 괴발개발 날아가는 글씨체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이참에 이 녀석의 나쁜 습관을 아주 뜯어고쳐 주리라, 굳게 마음먹고 아이와 마주 앉았다.
"별이는 공부하기 싫어?"
"귀찮고 놀고 싶어서..."
"그럼 하지 마."
아이 동공에 지진이 났다. 나는 아이에게 계속 말했다.
"엄마는 네가 공부 안 해도 아무 상관없어. 별이 성적이고, 별이 인생이야. 오히려 매일 오후에 별이가 전화해서 공부하기 싫다고 찡얼대는게 엄마 인생에는 더 방해가 돼. 공부하기 싫으면 그냥 하지 마."
아이는 황급히 말했다.
"오늘만 그런 거야."
"오늘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고, 지난주에도 그랬잖아."
"그거는..."
"오늘이 모이면 그게 네 인생이야. 오늘까지는 대충 하더라도, 내일부터 그냥 잘해지는 일은 없어."
"알겠어요. 죄송해요."
아이는 분위기가 심각해지는 것 같자, 갑자기 목소리가 짜부라들며 고개를 숙이고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더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 이대로 일상적인 훈육으로 끝나면, 도돌이표 같은 이 상황이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야. 혹시 별이는 하기 싫은데 엄마 아빠가 공부를 억지로 시키는 건가 싶어."
"아니에요."
"엄마가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별이 생각을 알고 싶어서 그래. 영어학원도 수학 문제집도 다 엄마 아빠가 권한 거잖아. 이참에 별이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계속 공부를 하고 싶은지, 아니면 그냥 그만하고 싶은지 이야기해 주면 좋겠어. 별이가 너무 하기 싫은 거면, 강요하고 싶지 않아. 별이가 살고 싶은 삶은 별이 스스로 정해."
진실과 거짓이 섞인 말이었다. 아이 생각이 궁금하다고, 아이 스스로 결정하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답정너'인 상황이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공부가 귀찮을 때가 있어서 그렇지 공부를 안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자신이 세운 계획대로 꼬박꼬박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오후마다 전화해서 엄마한테 공부하기 싫다는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했다.
신기했다. 아이에게 반드시 듣고 싶었던 말인데, 정작 그 말을 들었을 때 생각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그냥 덤덤하게 그래, 그럼 앞으로는 별이가 선택한 일이니 스스로 잘해봐,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아이를 설득하기 위해 꺼낸 말에 나 자신이 설득된 것 같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이지 공부를 하고 안 하고는 아이의 일이지 내 일은 아니구나 싶었다.
늘 엉거주춤함이 문제인 것 같다. 나는 내 일은 포기할 수 없고, 아이에 대한 엄마로서의 헌신보다 나 자신이 우선이었는데, 아이에 대한 욕심도 내려놓지는 못한 채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해왔다. 일하는 엄마지만 애 공부도 어느 정도 챙겨주고 싶고, 낮 시간 혼자 있는 아이의 마음도 다독여주고 싶고... 모든 것이 엉거주춤해서 태도도 오락가락했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 외에는 내려놓고 포기할 것은 깔끔하게 포기해야 하는데.
너 알아서 살라는 말은 아이를 내 뜻대로 행동하게 하려고 뱉는 말이었는데, 실은 그 말이 진짜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 인생은 내 것이고, 네 인생은 네 것이고, 그러니 너는 네 뜻대로 살아라. 자기 뜻대로 살아도 잘 살 수 있도록, 자기 뜻대로 해도 남에게 해가 되지는 않도록 해주는 게 부모로서의 내 몫이지.
또 한 번 새로운 버전으로, 이번엔 나 자신에게도 읊어본다. 그래, 별이 인생은 별이 마음대로 해. 엄마는 엄마 길 갈게.